◈ '꿈의 암 치료기' 중입자 가속기 도입 사업 차질(종합)

중입자 치료센터의 조감도.
2016년 말 개원할 예정인 이 센터에는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중입자 가속기가 국내 처음으로 들어선다. 2014.1.8
4년 만에 기종 변경, 예산확보 불투명, 운영주체 미결정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 협력체제도 없어 '장기 표류' 우려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를 국내 처음으로 부산 기장군에 도입하는 사업이 차질을 빚고 있다.
4년 만에 기종을 변경하는 바람에 사업기간을 애초 계획보다 1년 연장했으나 예산확보도 불투명해져 이마저도 달성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또 아직 운영주체가 결정되지 않았고, 인접한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의 협력체제도 구축되지 않아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높아가고 있다.
◇ 사업 착수 4년 만에 기종 변경…다시 설계 중
14일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부산 해운대·기장을)이 미래창조과학부에서 받은 자료 등에 따르면 원자력의학원은 2016년 3월까지 부산시 기장군 장안읍에 '의료용 중입자 가속기 치료센터'를 신설하기로 하고 2010년 4월 본격 사업에 착수했다.
원자력의학원은 1천950억원을 들여 세계 최초로 사이클로트론 방식의 중입자 가속기를 개발하기로 하고 지난해까지 437억6천여만원을 투입했다.
연구개발에 쓴 예산만 123억3천여만원이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치료원리<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산=연합뉴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는
수술을 하지 않고 탄소빔을 이용해 15분 정도 3~4차례의 치료로 암세포를 파괴시키는
'꿈의 암치료기'로 불린다. 사진은 치료원리.
이에 따라 지난해 11월 설계를 끝냈고 지난 1월 대대적인 착공식도 했다.
그러나 지난 1월까지 진행된 국내외 검증에서 사이클로트론 방식의 중입자 가속기로는 사업 기간 내 환자 치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일본, 중국, 독일, 이탈리아 등 외국에서 가동·건설하는 중입자 가속기는 모두 싱크로트론 방식이다.
사이클로트론과 싱크로트론은 중입자(탄소입자)의 이동 속도를 높이는 일종의 엔진이 다르다.
이 때문에 원자력의학원은 사업시작 4년여 만인 지난 5월 싱크로트론 방식으로 기종을 바꿨다.
원자력의학원이 의욕만 앞세워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원자력의학원은 또 기종 변경에 앞서 지난 1월 싱크로트론 방식의 중입자 가속기 설계를 시작해 최근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일찌감치 사이클로트론 방식으로는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입자가속기 치료 개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프랑크푸르트=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독일 중부 다름슈타트시에 위치한 GSI(독일 중이온가속기연구소)에서 첨단 암치료기인 중입자가속기로 암환자를 치료하는 개념도. 이곳에서는 암환자 1명을 치료하는 데 정확한 위치계산하는 시간을 포함해 20~25분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소개했다.
2010.11.17 ccho@yna.co.kr
이에 대해 원자력의학원의 한 관계자는 "사이클로트론과 관련한 특허를 9건 획득했고 핵심 장치에 대한 특허출원을 준비하는 등 성과가 있었다"면서 "허송세월을 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원자력의학원은 기종변경과 함께 사업기간을 2017년 3월로 애초 계획보다 1년 연장했다.
◇ 예산 확보 '빨간 불'…민간투자 유치 답보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다. 예산 확보에 빨간불이 켜졌기 때문이다.
원자력의학원은 미래부에 내년 예산으로 172억5천만원을 요구했지만 미래부는 140억원만 반영하기로 했다.
또 원자력의학원은 전체 예산의 38.5%인 75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지만 아직 한 푼도 확보하지 못한 실정이다.
특히 민간기업에서 500억원을 유치하기로 하고 사업을 추진했지만 해당 기업이 최근 수익성 부족을 이유로 협의를 잠정 중단하는 바람에 사정은 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원자력의학원은 중입자 가속기 제작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해 2017년 3월 준공 목표도 달성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산=연합뉴스) 의료용 중입자가속기 조감도.
꿈의 암치료로 불리는 '의료용 중입자가속기'는 국내 컨소시엄 주도의 국제 공동연구개발
사업으로 국.시비 등 1천950억원을 투입, 2016년 3월까지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인근부지에
건립될 예정이다. 2010.7.16. ccho@yna.co.kr
원자력의학원은 "기존에 추진하던 500억원 규모의 투자 유치 협의가 중단된 상태이지만 투자의향을 밝힌 2∼3개 기업과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사업에 초기부터 관여한 한 전문가는 "원자력의학원이 불투명한 민자유치를 고집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낼 게 아니라 금융기관 차입으로 재원을 조기에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원자력의학원이 민자를 유치하면서 보장해야 할 이익보다 금융기관 대출 이자가 훨씬 덜 부담스러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운영주체도 못 정해…"원자력의학원과 협업 체계 마련해야"
중입자 가속기 치료센터의 운영주체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미래부는 가속기 제작이 본격 진행되면 의견수렴을 거쳐 운영주체를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래부는 또 외국에서 운영 중인 8개 치료센터 가운데 6개는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2개는 종합병원 산하라고 설명했다.
중입자 가속기 치료센터를 독립기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꿈의 암 치료기' 중입자 치료센터 첫삽<연합뉴스 자료사진> (부산=연합뉴스) 민영규 기자
'꿈의 암 치료기'로 불리는 중입자 가속기가 들어설 중입자 치료센터가 10일 오후 부산
기장군 장안읍 의·과학 특화단지에서 착공식을 갖고 본격 공사에 들어갔다.
2014.1.10 youngkyu@yna.co.kr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근처에 있는 동남권원자력의학원과의 협력도 사업 초기부터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두 기관 사이의 연결통로 개설 계획도 없을 정도다.
양측이 협조체제를 구축하지 못하면 치료센터에 별도의 의료팀과 지원인력, 장비, 병실 등을 갖춰야 하는 등 중복투자를 할 수밖에 없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하태경 의원은 "중입자 가속기가 치료용으로 도입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남권원자력의학원이 운영해야 시너지 효과도 높이고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또 "운영 주체를 동남권원자력의학원으로 빨리 결정해 지금이라도 치료센터 구축 이후의 상황까지 고려하면서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면서 "금융권 차입 등 예산확보 방안 마련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원자력의학원은 "내년 초까지 중입자 치료센터의 운영주체 등을 포함한 최적의 발전 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 중입자 가속기란 = 중입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암세포에 쏘는 중입자 가속기는 치료과정에서 통증이 없고 후유증도 거의 없는 게 장점이다.
X선과 양성자 치료장비도 통증 없이 암세포를 파괴하지만 정상세포가 함께 손상된다. 중입자 가속기는 정상세포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어 다른 장기로 전이만 되지 않는다면 말기 암과 재발 암도 치료할 수 있다. 또 환자 한 명의 암세포를 제거하는 데 30분밖에 걸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