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장옥선 할머니 이야기 (증언)

2014. 1. 24. 23:20진실

 

나는 함경북도 풍산군 피발리에서 1920년 12월 28일에 태어났어요

 

13세였던 6월 어느 날 ...

논에 나가서 일하시는 부모님의 점심을 준비하기 위해서

물을 길러 마을로 갔습니다.

 

이때 무장한 일본군 한명이

나를 붙잡아 끌고 갔습니다.

 

부모님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모르고 계실겁니다.

 

주재소로 끌려가서 거기서

여러명의 헌병들에게 강간을 당했습니다.

 

내가 소리를 지르자

그들은 내 입에 양말을 쑤셔 넣고는

계속 그짓을 했습니다.

 

내가 소리내어 울자

주재소장은 내 왼쪽 눈을 갈겼고

그후로 내 왼쪽 눈은

다시 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열흘 쯤 지나서

혜산시의 군부대 막사로 옮겨졌어요.

 

그곳에는 약 400명의 조선의 어린 소녀들이 있었고

우리는 매일 성노예로

일본군 5000명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어떤 날은 하루에 40명 까지...

 

저항하면 그놈들은 두들겨 패고

입에 넝마를 집어 넣었습니다.

 

한 놈은 내가 굴복 할때까지

내 성기에 성냥을 그어 댔습니다.

 

밑에서는 피가 흘러 나왔지요..

 

한 조선 소녀가 일본군에게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하루에 40명까지 되는 많은 병사를 상대해야 하나요?

 

그러자 그 벌로 야마모토 사령관은 명령하였지요.

저 소녀의 목을 베어라 !!

 

우리가 보는 앞에서 그 소녀는

발가 벗겨진채 손발이 묶여

못이 박힌 판위에 몸을 굴렸습니다.

 

살점과 피로 온몸이 범벅이 될 때까지..

결국에는 그 소녀의 목을 베었지요..

 

야마모토 사령관은 말했습니다.

“너희들을 죽이는 건 개를 죽이는 것보다 쉬운 일이야 !

“배가 고파서 너희들이 울고 있으니 인간 살점을 끓여서 먹어라.”

 

다른 조선 소녀는 수차례의 강간으로 인해 성병에 걸려

50명 이상의 일본군에게 전염이 되었지요.

 

병이 번지는 것을 막기위해 그놈들은

뜨겁게 달구어진 쇠막대를

소녀의 성기에 집어 넣었습니다.

 

어느날 우리들 40명을 트럭에 태워

멀리 뱀이 들어있는 웅덩이로 데려갔습니다.

그리고는 한명씩 웅덩이에 빠트리고

흙으로 덮어서 생매장을 하였지요.

 

한 일본군 장교가 말했습니다.

“천황폐하를 위해 몸을 바치면 좋은 대우를 받는다!”

 

하루밤에 10·~15명의 군인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임신...

그들은 자궁째 태아를 들어냈습니다

일본 때문에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혼자 있을땐 옛 생각이 떠올라 눈물이 납니다.

 

그해 8월 27일 칼을 찬 군인이 물었습니다.

“군인 100명을 상대할 수 있는 자가 누군가?”

 

그때 손을 들지 않은 15명의 여성들은

다른 여성에 대한 본보기로 죽였습니다.

 

발가벗겨진 여성을 머리와 발을 잡아

못박힌 판자위에 굴렸습니다.

 

분수처럼 피가 솟고

살덩이가 못핀에 너덜거렸습니다.

하늘과 땅이 온통 뒤집어 진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 군인들은 못판 위에서

죽은 한 여성의 목을 쳐 떨어트렸습니다.

 

나와 다른 여성들이 울고 있는 것을 본 중대장은

“위안부들이 고기가 먹고 싶어 우는구나!!”

 

군인들은 죽은 여성의 머리를 가마에 넣어 삶았습니다.

그리고 나무칼을 휘두르며

우리에게 억지로 마시도록 했습니다.

 

1933년 12월 1일에는 한 장교가

여성의 자궁에 철봉을 꽂아 죽였습니다.

 

다음해 2월 4일에는

매독에 걸린 사실을 신고하지 않아

장교에게 병을 옮겼다는 이유로 한여성이 피살 되었습니다.

 

일본군이 벌겋게 달군 철막대를 자궁에 넣었고

여자는 즉사했습니다.

뽑아낸 막대에는 검게 탄 살점이 달려 있었습니다.

 

문신은 온 몸에 걸쳐 새겨 졌습니다.

군인들은 처음부터 죽일 셈으로

여성들에게 문신을 했습니다.

 

마차에 실려온 여성들을 팽개치는 모습을

멀리서 보고 있던 한 중국인 남자가

일본군이 사라진 뒤 숨이 남아있던 여자두명을 옮겨

약 두달간 간호해 주었지요..

 

나는 기적적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습니다.

 

 

 

 

 

 

 

 

 

 

 

 

출처 : 제령사주
글쓴이 : 무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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