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무현 의문사 분석

2014. 2. 1. 19:09진실

원제 : 사건예상경위를 담은 아고라조사대의 4박5일 현장채증사진 공개

 

 

-노무현 대통령서거 관련하여 김전대통령비서관과의 통화내용입니다-


비서관 : "유족하고 의논하라"

 

주후70강림 : "유족들은 감시당하고 있어서 접촉하기 힘들다."

 

"장례위비서관 : 원들과 의논하라.."

 

주후70강림 : 타살에는 측근들이 관여 되어 있어서 어떻게 그들과 의논하느냐?

 

비서관 : ???.... (나는) 장례위원들의 말을 믿는다

 

주후70강림 : 비서관님의 생각이 김전대통령의 뜻이라고 해도 되겠습니까?

 

비서관 : (머뭇거리다)??? 장례위원들이 경찰발표에 이의를 달지 안한 것으로 안다

 

주후70강림 : 비서관님은 노전대통령의 타살 의혹을 밝히는데 김전대통령이 관여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까?

 

비서관 : !!! (엉뚱한 이야기하다가)지금 바빠서 이만 전화 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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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노무현대통령을 이대로 보낼 수 없습니다.

제가 감옥에가서, 법정에서 밝혀서라도 노무현의 타살을 밝히려고 합니다.

무혈혁명입니다.

 

한번 쏟아진 노무현의 피는 주워 담을 수 없었습니다.

노무현이 흘린 고귀한 피를 찾아 수십 수백 수천명의 옥합에 담아서

타살의 증거로 검찰에게 재수사 요구하면 검찰들은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노무현대통령의 불상사를 재수사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수천명이 모이는 49재가 노무현의 피를 옥합에 담을 절호의 기회입니다.

 

다음에 있는 사진과 내용은 노무현대통령타살의혹에 관련 주후70강림의 조사 내용입니다.

퍼날라주세요

우리에게 민주주의가 뭔지, 민주주의의 맛을 알게 해 주셨던 우리 임금님!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노통의 불상사를 법정으로까지 비화시켜 현재의 공포정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노통의 죽음은 의문사가 아닙니다. 암살후 투신자살 위장실패 사건입니다.

 

역사에 등장하는 위인들(예수, 간디, 링컨, 케네디, 이순신, 김구 등등)의 죽음은 타살이었습니다.

 

나의 님이여!

노통의 피를 찾았사오니 복수는 님께서 대신하여 주시고

울 노짱님은

저들을 용서하시고, 우리 마음에 다시 살아 숨쉬소서

 

 

 



 

6월 16일 밤12시경 세영병원 외부

 

문용욱비서실장에게 07:00에 연락하고

비서진등이 경호차량으로 07:00에 도착했다는 세영병원 응급실,

아고라조사대가 막 도착한 고요한 밤(6월 16일 12시경)은 정적 이 감돌고

 

노대통령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어 왔다는 세영병원 응급실입니다.

 

-작년 시위때 돌멩이에 맞아도 이정도였는데

 

부엉이바위 이외의 장소에는 피가 없어야 투신자살을 위장할 수 있으므로

상의로 노통의 머리를 감쌌겠죠.

정수리 11cm 열상, 피범벅이 된 노통의 얼굴,

피묻은 상의는 현장에 도로 갔다 놓고 채증하는 장면을

사고 당일 현장보존시간에 우연히 공중파로 송출하였습니다.

모든 국민이 알도록 하늘이 도왔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99032

 

CCTV설치유무에 관심히 집중된 응급실 내부,

 

세영병원 옆에 30년동안 살았다는 가게주인도

세영병원에는 CCTV가 없었다고 하니 CCTV존재 유무는 나중에 밝혀질 사소한 문제인 듯

지금 시점에 중요한 문제는 형사콜롬보의 귀류법(쥐덫 놓기식 증명방법)수사로

어떻게 사건의 윤곽을 정확하게 파악하느냐?였다

 

아침 안개 자욱한 사고 현장이 한 눈에 보입니다.

 

사고 당일 아침에도 저 앞에 가는 사람들처럼 이 길을 걸어가는 노짱 모습이 어른 거립니다

귀거래사(歸去來辭) 노짱이

不歸의 客이되어 ........

사고당일 아침, 응급실에 있었던 간호사(피범벅된 노짱의 얼굴을 닦아냈다는 간호사?)는

잘 안나온다는 답변을 동료간호사로부터 들었고

또 다른 간호사는 잘 모르는지 아는지 아무 말 없고

노짱님이 어디에서 응급처치를 받으신거 같으냐고 물었더니

 

-이 곳에서 받지 않았을까요~ 하더군요~

 

노대통령의 불상사는 형사콜롬보의 귀류법수사(쥐잡기 수사방식)로만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다.

 

부엉이바위 투신으로 사인이 두부손상(두부골절, 頭頂部11cm 裂傷, 뇌좌상)이므로

부엉이바위 밑에는 다량의 피가 있어야한다는 대전제

 

1. 부엉이바위밑에 다량의 피가 없으면 부엉이바위투신이 아니다.

2. 부엉이바위투신이 아니라는 결론으로 부터 다른 장소에서의 타살유추

 

수집된 타살 정황/증거에 맞춰 암살예상경위를 작성한 후에는

부엉이바위 이외의 장소에서 다량의 피 흔적이나 유류품을 찾으면 쥐새끼는 잡힌다 .

 

작년 시위때 돌멩이에 맞아 머리가 1cm 찢어져도 머리가 피로 젖을 정도인데

정수리 11cm 열상으로 돌아가신 부엉이바위에는 노통의 피가 없다?

 

노통서거후 아고라인들의 와신상담

그 중 5명(7인)의 아고라조사대는 찜질방에서 새우 잠을 잔 후
아침식당까지 운영하는 정토원 가는 길 편의점에서 아침식사를 하기로 하였습니다.

이 편의점이 봉하마을 가기전 "y"자 갈림길에 있는 식당입니다.
노무현대통령이 자주 들렸다는 편의점입니다.
아이스케키를 먹는 울 노짱!

 

사기꾼암살자들이 국민의 눈을 속이고 정토원주차장에서

노통의 시신을 경호차량에 싣고,

이 편의점 앞을 통과했다고 생각하니 분노의 눈물이.......

 

아침식사로 국밥까지 먹고나니 두번째 와신상담의 날

범행(시해) 현장을 역추적하여

쥐새끼들의 지름길인 정토원찻길(노통사저뒷길)로 계속 가보겠습니다.

 

-위 안내도에는 정토원 가는 찻길이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사기꾼암살자들이 이런 안내도를 이용하여 국민의 눈을 부엉이바위로만 향하게 하였습니다

 

수구언론은 물론 노통측근들까지 정토원찻길을 보지 못하도록 속였지만

아고라 조사대는 안속는다.

봉화산위성사진

http://local.daum.net/map/index.jsp?t__nil_bestservice=map

위 주소를 열고 "부엉이바위"로 지도 검색해 보고

"y"자 길에서 왼쪽으로 (노통사저가 있는 쪽이 아닌 정토원찻길로) 한 번 가 보겠습니다.

(허지우바님 작성)

 

왼쪽 세 갈래 길에 있는 빨간 화살선부터 정토원까지 아고라 조사대의 이동경로입니다.

 

노통 암살자차량도 이 빨간화살선을 따라 정토원주차장으로 갔겠죠

그러나 쥐새끼들도 "공수래 공수거" 가 되는 것은 당연지사

 

사고발생 예상 시간 동안(06:00~07:00)에

경호동 앞 도로 CCTV에는 사저 반대방향(봉하마을 밖)으로 나가는 경호차량이 두 대가 찍혔기 때문에

CCTV를 공개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였습니다.

 

이런 쥐새끼들의 사정을 이 정토원찻길을 가다보면서 알게 될 겁니다.

범행차량과 위장차량

쥐새끼의 원래계획은

노통의 시신을 부엉이바위옆 지름길(오솔길)로 부엉이바위밑에까지 옮긴 후에

비서관등에게 타살을 투신사고로 연락할 계획(06:40)이었지

 

그런데 이른 새벽부터 부엉이바위 옆에는 농부들이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부엉이바위 뒷편 길로 노통의 시신을 싣고 세영병원으로 갔었지.

 

병원도착 전에는 경호동에 연락하여 부엉이바위주차장에 위장 흰색차량(06:56)을 보내어

안는 장면을 연출한 2명의 경호원을 싣고 빨리 뒤따라 오라고 연락했지.

막힘없이 잘 달립니다.

노통의 시신을 차에 실은 암살자들도 암살이 성공했다고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이곳을 막힘없이 통과했겠죠

 

가면서 부엉이 바위밑에 있는 2명의 경호원에게 안는장면 계속 연출하도록 연락했겠죠.

"안는장면 연출 이상무!"

"고추밭 이씨 안는 장면 보았음. 멩가카 연출 수법으로 성공"

이때 시간이 아침식사(06:30)하러 가기 전 시간 06:25

(이씨 집에서 고추밭까지 걸어서 5분거리 확인)

가다가 우측으로 난 길로 들어 갑니다.

이 "ㅏ" 자형 갈림길 모퉁이에는 신진중공업공장(토목/토관자재)이 있습니다.

 

쥐새끼도 정토원찻길에서 나와 두리번 거리며 우회전 할 때는

농촌 아침 식사 시간이라 지나는 사람도 차도 없다!고 했겠지

혹 차가 지나더라도 노통을 실은 차는 썬팅이 되어 있어서

차안에 있는 노통의 시신은 밖에서는 안 보인다. 그래!

 

이때부터 쥐새끼들은 방심하였지,

아니 노무현의 넋이 아직 차안에 맴돌고 있었지.

그래서 헛것이 보였겠지

 

봉화산 호랑이노통을 잡았더니 땀이 나서 목이 컬컬하여

준비된 맥주도 마시고, 소주도 마시다보니 무전연락을 깜박했지

고추밭이씨가 집에 도착(06:30)후에 즉시

06:40분 이전에 경호동차량을 부엉이바위주차장으로 보냈어야 하는데 말이야......

 

16분이나 늦게 06:56에 흰색차량이 경호동출발후,

06:59에 부엉이바위주차장을 출발했다고 경찰이 발표했으니

위장 흰색차량의 세영병원 도착시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지.

1분 안에 세영병원도착(07:00)말입니다.

(세영병원 차트에는 도착시간을 7시 4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세영병원 관계자는

"차트에 기록되어 있는 시간은 이미 환자가 들어 온 이후다. 환자를 보지 않은 상황에서 차트를

기록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들어온 환자를 본 상황에서

차트를 기록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http://www.newshankuk.com/news/news_view.asp?articleno=d20090602170809n4983

 

경호동앞 CCTV의 처음시간(흰색차량의 경호동출발 06:56)은 공개하는 척하더니만

나중 시간( 흰색차량의 경호동 앞 통과CCTV)까지 공개 못하는 쥐새끼의 사정이 여기에 있었지.

병원도착시간(07:00)에 맞춰 1분 전 06:59을 흰색차량의 경호동 앞 통과CCTV시간이라고 말입니다.

 

사건사고 수사에서는 알리바이(현장부재증명)만 맞으면

몇십분 시간이 안 맞더라도 아무 이상이 없는데 왜? 경찰은 1분을 가지고

그렇게 야단법석(부엉이바위주차장출 발시간 06:59)을 했느냐하면 다 이유가 있었지롱!

그 이유는 실제로 울 노짱님은 피범벅이 된 상태로 07:00 이전에 세영병원에 도착한 것이지요

정토원지름길(찻길)로 말입니다.

안 그런가요? 노짱님! 맞고요 맞고요 맞습니다.

 

노무현의 정신(넋)이 썬팅된 차안에서도 이"개독" 멩가카"장로"의 신또라이들에게

" '도로나무아미타불'로 막 가자는 거지요 "라는 노통의 말씀때문에

깜박하여 16분(56-40)이나 지체했나 봅니다.

이런 쥐새끼의 16분은 용서하는 마음으로 이해하여 넘어갑니다.

"왕쥐를 잡는 것이 아고라 수사의 최종목적"

 

우측으로 올라가는 입구도 아스팔트길입니다

(이 곳에 경호원을 배치하여 정토원로 가는 등산객/차량통제했을 가능성)

 

노통의 시신을 실은 경호차량은 잠시 세우고

경호원을 태우고 급하게 출발했겠죠

"야! 경호원! 정토원으로 올라오는 차없었지"

" 예! 없었습니다."

 

가다보면 편편한 시멘트 포장길이 나옵니다.

이쯤에서 암살자들도 암살에 성공했다고 편한 마음으로 호흡을 가다듬고 경호처로 연락했겠죠

"멩가카 성공했습니다."

다 왔습니다.

암살자들도 정토원선법사/보살의 눈을 피해 암살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여기며

정토원주차장 "도로"를 유유히 빠져나왔겠죠

 

그런데 이 멍청한 멩가카 하수인들이 하나 같이 도로에 있는 부처님의 성경구절을 못 봤겠지!

메~롱!

정토원입구 도로 "나무아미타불"상

"도로나무아미타불"

 

비포장길 옆(오른쪽)에 정토원 주차장이 보입니다.

아침시간이라 도로에 깔아놓은 석분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서 암살자들이 조마조마했을 걸

"도로나무아미타불" 될까 봐! 바삭 바삭 바삭 바스르윽,

 

주차장으로 들어가서

정토원새벽예불(04:00)에 참석하러 왔다가 부엉이바위 산행하는 것처럼

위장하는 기분으로 차를 댈만 한 으슥한 구석을 찾아 보았습니다.

암살자가 차 대는 것처럼

"빨리 차대! "

 

 

손짓을 하는 방향으로 올라가면

부엉이바위의 뒤 쪽이 나옵니다.

암살자도 어디쯤에 차를 댈까 고민한다

썩은 소나무있는 곳, 제일 큰소나무가 있는곳, 경계석(바위돌무더기)이 있는 맞은편,

헷갈려! 사전 모의 범행 연습때와는 다른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오솔길이 있어 한 번 올라 가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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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사진은 나중에 공개 합니다만 특이한 사항은

폐타이어 태운 흔적과 먹다남은 요구르트병 숫자였습니다

폐타이어를 태운 이유?

3, 4, 5인으로 이루어지는 경호조, 요구르트 마신 후에

한군데 모아놓은 요구르트병 숫자가 다섯이었다는 사실로 보아

노통 사고당시 5명의 경호조에 미지수가 추가된 범행자의 총수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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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갔다가 다른 길로 내려왔습니다. 여기는 정토원 주차장 중간 지점입니다

목교에서 두 번째 가까운 텃밭입니다.

 

정토원 찻길 오른쪽 공터는 모두 주차장입니다.

이 장소도 숲옆으로 바짝 차를 대서 노통의 시신을 옮기기에 적당한 장소입니다.

아니면 이 사진 끝에 있는 장소(텃밭입구)에 차를 댔다면

차바퀴 흔적이 남지 않도록 컨테이너 창고앞에 넓게 깔아놓은 부직포(不織布)위가 안성맞춤

오른 쪽 컨테이너 창고 앞에 넓게 깔아져 있는 하얀 부분이 부직포입니다.

이 부직포 위에 범행차량이 주차했을 가능성이 젤 많습니다.

 

이곳이 목교하고 젤 가까운 주차장(공터)입니다.

텃밭에 사용할 물통 둘이 있고, 경운기 뒤부분 짐칸도 있고, 불 때는 가마도 보입니다.

여기서 암살자들은 만약을 대비해서 농부인척 하며 노통의 시신을 옮겼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길이 노통의 시신을 대기차량에 옮길 만한 오솔길입니다.

 

방향을 바꾸어서 찍어 보았습니다. 왼쪽이 주차장입니다.

(주황색 작대기는 화살표인데 화살표가 넘 흐리네요~)

 

사진 찍은 장소(정토원주차장구석 )에 있는 소나무를 몽둥이로 두 번 쎄게 쳐 보았습니다.

아침시간에도 마늘밭에서는 안 들렸습니다.

정토원주차장 부근은 타격장소가 아니었다는 실험입니다.

조금 올라가서 Y 자 지점(주차장 길과 정토원 가는 등산로)에서 뒤돌아

텃밭 옆 주차장을 향해 찍은 사진입니다.

앞에 하얀 부분이 목교에서 젤 가까운 정토원 주차장입니다.

이 내리막 등산로로 노통의 시신을 정토원주차장 대기차량에 옮겼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위 사진의 정반대로 찍은 사진입니다.

여기서도 바로 왼 쪽 소나무를 쳐보아도 마늘 밭에서는 안들렸습니다.

정토원에 가면 그 옆에 오래된 상이 있습니다

봉하마을 내려다보는 오래된 상은 사명대사성상이라고 합니다.

http://cafe.naver.com/tjswotjswo.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255

 

지금은 오래되어 보기 흉한 상이 되었지만

노통은 사고당일 아침에 무슨 중대한 결심을 하기 위해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한 의병장 사명대사에게 간 것일까?

살생을 금지는 스님이 칼을 들어야만하는 시대 정신을 생각한 것일까?

BBK를 생각했을까?

노통은 저 빈 의자에 앉았을 까?

암살자는 정토원이 가까이 있는 것을 알고,

노통이 단말마 비명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먼저 노통의 입부터 마비시켰을 겁니다.

여기서 노통이 암살의 낌새를 눈치채고 도피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올라왔던 목교쪽입니다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면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게 인지 상정.......

정토원보살이 본 노통의 뒷모습일까?

이 길의 끝에는 정토원이 있고, 거기서 나오면 사저도 보이는 바위 언덕이 있습니다.

 

(정토원에서 나와 언덕에서 부엉이바위를 향해 찍은 사진입니다.)

 

저 앞에 보이는 시멘트길은 주차장 바로 위쪽에서 옆으로 저수지길로 빠지는, 공사중인 새 길입니다.

이 새 길이 정토원찻길로 연결되어 있고

사람이 전혀 다니지 않은 은폐/엄폐된 길이라 노통의 시신을 옮겼을 거라는 추론을 저도 한 때 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투신자살위장하는 암살자 입장과 도피하는 노통 입장, 두 심리를 종합해 본 결과는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하여 사건예상경위에서 배제하였습니다,

(등산로입구에 있는 농부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폐쇄된 등산로)

 

저도 현장에 가서 깊게 생각하기 전에는 저수지길을 이용한 노통시신 이송을 예상한적이 있었습니다만 저수지길을 이용한 노통시신이송을 사건예상경위에서 배제한 이유를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암살자가 저수지길을 이용하여 노통의 시신을 옮기려면 노통이 부엉이바위 꼭대기 부근에 있어야 하는 가정이 있어야하고, 거기서 입이 마비된 노통이 어쩔수 없이 도피한 방향이 폐쇄된 등산로일 때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위 가정의 경우에 투신자살을 위장하려는 암살자 입장에서는 노통의 시신을 차량으로 옮길 필요없이, 은폐/엄폐된 폐쇄된 등산로를 이용하여 노통의 시신을 부엉이바위밑으로 옮겨 완전범죄(피흘리도록 방치)하였을 거라는 이외의 결론에 도달하였다는 설명을 짧은 글로나마 강조하여 알려드립니다.

 

따라서 저수지길을 이용하여 노통시신을 세영병원으로 옮겼다는 사건예상경위는

현실(투신자살위장)과는 전혀 맞지 않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거듭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경호원의 경호차량대기 무전연락을 엿들은 노통이 암살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사랑하는 가족(집)으로 돌아가려고, 왔던 길로 내려가는데 마비된 몸이 비틀거렸을 거라 생각하니...눈물이

 

세 갈래 길입니다

 

여기서 부터는 소나무를 두번 치는 소리가 마늘밭에서 들렸습니다. 툭! 탁!

노통이 마지막 가는 길에도 눈에 보였을 세 갈래 길입니다.

 

이 부근 숲이 노통이 암살의 낌새를 느껴 도피하다 몸이 마비가 와서

더이상 내려가지 못하여 숨었던 장소였을 가능성이 많아

왼쪽 숲을 또 다시 확인하려고 합니다.

 

세 갈래길에서 목교 사이에 있는 등산로의 왼쪽에 있는 소나무에

팔목정도의 몽둥이로 두 번 쎄게 쳤더니

소리가 마늘밭에서 툭! 탁! 소리가 선명하게 들린 위치입니다.

 

목교 (나무다리)

목교밑으로 작은 도랑이 있고 물이 조금씩 흐릅니다.

이 물로 저들이 손에 묻은 시뻘건 피를 씻었을까?

하늘은 알고 있다.

저 흙탕물을 유심히 보아주십시오

 

부엉이바위로 가는 입구입니다.

저기 있는 사람이 부엉바위를 통제하는 경비원의 모습입니다

만약 저 경비원이 있는 쪽에서 이경호관이 건넨 독이든 담배때문에

입이 마비된 노통이 도피하여 이쪽으로 왔다면

 

노통이 목교(나무다리)를 통과하자마자 기다리던 암살자가

노통의 엉덩이/늑골을 타격하여 걷지 못하게 한 후에

피가 바닥에 흘리지 않도록 상의를 노통의 머리에 씌우고 두번 세번 타격,

툭! 탁! (쿵)소리가 마늘밭에서 선명하게 들렸을 것이다.

 

 

목교가 마음에 걸려 내려오면서 다시 한번 뒤 돌아 목교를 찍었습니다.

목교가 보이는 비탈바위길입니다.

이 비탈바위는 등산로 입구에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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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길을 내려오면서 약수터 암자의 보살을 만나 보았습니다.

 

07:20 봉하마을뻐스를 타고 매일 출근한다는 보살은

이미 사건이 종료된 시각 이후에도

등산로 입구에서 일하는 농부를 보았다고 전해 주었습니다.

 

암자 보살도 노무현대통령서거에 타살의혹을 갖고 있었습니다.

세 사람(조직?)이......어찌했다고 말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암살자가 손에 묻은 노통의 피를 목교도랑물에 씻었기 때문에

여기 바위틈에서는 아직도 피 냄새를 맡을 수 있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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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란 물통은 왜? 부엉이바위 옆 지름길에 있지

노짱을 향한 우리의 마음을 담은 노란 물통인가?

이 노란 물통 옆으로 노통의 시신을 옮기다보면

농부들의 눈에 띌까봐 이곳으로 노통의 시신을 옮기는 계획을 포기한 건가?

 

 

노란 물통에서 조그만 더 앞으로 가면 감나무 사이로 노란 추모띠들이 보입니다

 

이 길이 농부들의 눈에 안 띄는 지름 길인데

암살자가 노통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오는 모습이 농부들의 눈에 띌까봐 지레 겁을 먹었군요

암! 그래야지. 암살자라고 시신을 메고 오는데 겁이 안 나겠어요

 

만약 암살자가 큰 맘먹고 노란 물통 옆으로 노통의 시신을 옮겼더라면

"암살후 투신자살 위장 완전범죄"

 

노통의 시신은 부엉이바위앞까지 옮겨지고, 다량의 피를 흘리도록 방치하여

비서관도 부르고, 농부들도 부르고, 경호원도 부르고, 기자들도 불러서

사진 찍고 조중동 대서 특필, "노무현 전대통령 투신자살 현장 발견"

전국노래자랑을 했을 걸!

 

경찰발표 투신예상지점(부엉이바위)의 왼쪽에는 폐쇄된 등산로가 있었지만

노짱은 그 쪽(부엉이바위)으로 등산 갈 이유가 없고,

사명대사 성상(정토원 근처에 이름없는 오래된 상)이 있는 쪽으로 갔었지

지금은 오래되어 보기 흉한 상이되었지만

노통은 중대한 결심을 하기 위해

임진왜란을 구한 사명대사에게 간 것이지요

완전범죄(암살후 투신자살 위장)를 못하도록 먼저 가신 님의 넋이 막으셨습니다.

"사기꾼은 지름길(오솔길) 출입금지!"

 

사고 전날에 비가 와서 농부들이 사고당일 아침일찍 밭에 나갔고,

노통이 이들과 대화를 했던 것이 신의 섭리였습니다.

오마이갓! (나의 신이시여!)감사합니다

부엉이바위 왼쪽에 있는 험한 길인데요.

이 길이 목교가 없을 적에 부엉이바위꼭대기로 올라가는 옛길입니다.

이 길이 등산로입구에 있는 농부들의 눈에는 안 보이는 폐쇄된 등산로입니다.

폐쇄된 등산로 끝인 부엉이바위입구입니다

 

CIMG2487.JPG

부엉이바위 정상

현장감식반들이 노통의 혈흔이나 머리털 하나 찾아 내지 못한 부엉이바위의 모습입니다

경찰은 여러 혈흔과 머리털이 발견되었다고 주장했으나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거! 이거!

현장보존시간에 피묻은 상의 들고가서 조작질 채증하다가 들켰습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99032

사고 당일 구천을 떠돌던 고인의 넋이 경찰의 조작장면을 주시하였나봅니다.

YTN카메라맨이 우연히 찍어서 전국에 공중파로 보낸 장면입니다

 

조작질하는 경찰들아!

 

조작질하는 경호원, 참관인들아!

거기에 노무현대통령의 두부골절(두정부11cm열상) 때 흘린 피가 있더냐?

 

제시하는 즉시 거짓임이 계속 들통났었지

두려워서 말로만 혈흔이 있다고 하는 경찰이 불쌍타!

 

떨어진 곳에 혈흔돌멩이(돌밑에 솔잎이 있고 겹쳐있는 돌)는 어디로 갔는지...?

경찰이 조작하여 제시했던 피 한방울

책상에 떨어진 코피도 이 보다 많을 텐데

그 보다 돌밑에 솔잎이 있어!

최근에 갖다놓은 돌로 판명나니 6월1일 현장재연 감식순서에는 아예 없었지요

 

엉뚱한 장소의 사진인데요.

경찰이 겨우 제시한 투신예상장소 사진에 있는 돌은 오래 박혀있는 돌이긴 한데 피 없는 돌

 

혈흔 돌은 온데 간데 없고

부엉이바위에서 노통이 투신했다고 믿는 추모객들이 꽃다발을 가져다 놓은 사진

5명의 살인 경호조에게 바치는 꽃다발이 되었으면 합니다.

 

몹시 가파릅니다

 

경찰발표 현장재연(6/1)동영상입니다.

http://www.tagstory.com/video/video_post.aspx?media_id=V000324853

(혈흔이정표의 위치를 숨기는 조선 동영상)

 

 

신문방송까지 장악한 경호처(이명박정권의 실세)는

부엉이바위(투신예상지점)와 노통이송 재연주차장(혈흔이정표)의 실제경사거리(48보=20m)를

멀리 떨어진 거리(경찰발표 66m)로 생각하도록 조작하여 공중파로 보냈습니다

 

"실제로는 안는 장면만 연출했고 노통을 어깨에 멘 적도 없다."

공중파로 고인을 개망신 주려고

거꾸로 어깨에 멘 장면을 현장재연하였으나 실험해 보면...

 

어깨에 메고 가다가 힘들어 손으로 잡았다는 이정표가 보입니다.

"저 현장재연자의 오른 손을 잘 보세요"

 

오른 쪽 어깨로 노통을 메고 가다가 힘들어서

오른손으로 이정표를 잡는다고? 웃겨도 한 참 웃긴다

혈흔이정표가 있는 곳은 부엉이바위 바로 앞입니다.

투신예상지점(폴리스라인)에서 밑으로 뛰어 보았습니다. 경사길 48보(약20m)였습니다.

현장재연하는 위 사진과 아래 사진을 자세히 비교해 보세요

상의가 벗겨졌습니다.

그러면 사고당일 현장보존 시간에 들고온 상의는 어케된 거유?

문재인 장례위원장님!

답해보시구료

 

 

내려가는 길이 너무 경사져서 위험하다보니

임시 돌계단이 파헤쳐질 정도였습니다.

옆으로 조심조심 내려가서 이정표 옆에 쪼그려

주후70강림이 직접 혈흔의 크기를 측정 해 보았습니다.

 

장정 허벅지 높이 즈음에 묻어있는 혈흔 달랑 두 방울입니다

쪼그려 앉아서 담배갑으로 혈흔 크기를 비교한 사진입니다

 

경찰발표사진의 혈흔 높이는 무쟈게 높게 조작했어요

 

저기에 쳐다보는 사람의 가슴정도로,

그리고 4 개의 나무를 합쳐서 만든 이정표 기둥을

한 개의 나무기둥으로 보이도록 조작하여

혈흔이 기둥과 비교하여 상당히 크게 보이도록 조작했구먼요

 

이 혈흔이...

노짱을 짐짝처럼

오른 쪽 어깨에 메고 내려오다가...

힘들어서 오른 손으로 짚은 흔적이랍니다...

 

오른 쪽 어깨에 사람을 메고 오른 손으로 잡으면 어케되요?

국민(학생)여러분!

게다가 화살표지판 아래를 잡다가는 주저앉게 되어 쓰러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피가 화살표지판 아래에 있거든요.

 

다시 시도 해보았습니다. 화살표지판을 잡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화살표지판 아래에 있는 두 방울 코(피) 흘린 정도의 혈흔 자국은

사건종료 후에 조작되었다는 결론입니다.

 

23일 06:56경

부엉이바위주차장에 도착한 흰색차량은 주차장 구석, 나무로 가려진 이정표 부근에서

두 경호원(안는장면 연출자)을 옆문으로 몰래 태우고 유유히 부엉이바위주차장을 빠져나간다.

08:40까지 마늘밭에서 계속 일했다는 박씨는 주차장에서 사람을 차량에 싣는 장면을 목격하거나 웅성거

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고 진술........ 농심은 천심

 

왼쪽 나무 뒤쪽에 바로 혈흔이정표가 있습니다.

주차장은 부엉이바위밑 부분을 형성하는 경사흙무더기에 붙어 있습니다.

 

엉뚱한 장소에서

엉뚱한 연출자들이

나무 사이로 기어 나와

옆문으로 몰래 흰색차량에 탔으면 그것으로 족하지 무슨 개수작이야!

그 장소는 바로 앞에서 일하는 두 농부가 볼 수 있는 위치거든!

인공호흡을 제대로 재연하시려거든 경호차량(구급차)가 오기 전까지 투신했다는 부엉이바위 밑에서 하시구료!

고인을 개망신 주려고

붕엉이바위밑에 있지도 않은 시신을 짐짝처럼 어깨에 메고 가는 장면을 공중파로 보내다니!

벼락맞을 누구누구 다 보이는군!

 

퉤!

저 사기꾼들이 꼴 보기 싫어

나무 사이를 나와 주차장을 가로질러,

노통이 마늘작황이 어떠냐고 물어본 농부들에게 가보겠습니다.

 

주차장 끝에 가서 부엉이바위를 뒤로 하여 등산로 입구방향으로 찍은 사진입니다.

 

저 위 고추밭에서 이씨가 안고 있는 장면목격(06:30전후 ) ,

저 아래 마늘밭에서 아고라취재에 협조한 박씨는

주차장에 차 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06:56경)

 

마늘밭은 주차장보다 낮아서,

마늘캐기하던 농부(박씨)가 누군가 안고 있는 장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사실 ,

이 밭에서 박씨는 딸이 휴대폰으로 노무현서거 긴급뉴스를 전해 줄 때까지

마늘캐기 작업을 계속 했다고 합니다.

일하는 동안 흰색차량이 와서 검은 양복입은 사람이 내리더니 "차돌려"하는 고함 소리는 들었지만

이후에는 아무런 소리도 싣는 장면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결국은, 나무로 가려진 주차장 구석(혈흔 이정표)에서

안는 장면 연출자 두 경호원을 흰색차량에 몰래 싣고 출발했다는 결론입니다.

 

고추밭은 주차장보다 높아서 부엉이바위앞이 잘 보입니다.

그래서 고추밭 이씨는 부엉이바위밑에서 누군가 안고 있는 장면 목격합니다.

장면목격 전/후에 이씨는 아침식사(06:30)하러 먼저 가고

이씨 부인은 혼자 고추밭일을 하다가

마늘밭 박씨보다 먼저 집으로 갔다고 마늘밭 박씨가 전해 주었습니다.

박씨가 마늘캐기를 끝내고 집으로 간 시간은 노통서거 아침 긴급뉴스연락받은 이후

 

부엉이바위는 흙으로 둘러쌓인 경사 밑 부분까지 합해서 보면 높아 보입니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오시는 조문객들은

추모대상이 다른 곳에서 암살된 줄도 모르고

엉뚱한 부엉이바위만 멀뚱멀뚱 쳐다보면서 정토원으로 가시고 계십니다.

마치 귀신이 곡할 노릇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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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시간 순서로 정리한 사건예상경위 읽어보면 우리 노짱이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감을 잡게 될 겁니다.

 

 

1. 23일 05:38,

사저를 출발한 노통이 등산로입구에 있는 농부들과의 대화 이후에 목교~사명대사성상(오래된상)까지 간다.

 

2. 이경호관이 자연스레 노통의 입(비명소리)을 마비시키려고 독이든 담배(이경호관의 담배이야기 역추론 ) 노통에게 건넨다.

 

3. 몸(입)에 이상함을 느낀 노통이 이경호관에게 말을 하려고 하나 이미 말을 못한다.

 

4. 이경호관은 자연스레 경호차량을 정토원주차장으로 부르는 연락을 한다.

 

5. 노통이 이경호관의 무전송출(정토원주차장 첫 텃밭 차량준비) 내용을 듣고 암살의 낌새를 알아차리고 올라온 등산로 목교 쪽으로 도피한다.

--이때 정토원 보살이 노통의 뒷모습을 본다.---

 

6. 목교쪽으로 간 노통은 독이 온몸에 퍼진 상태라 더 이상 하산길로 도피하지 못하고 어떤 장소에 숨거나 쓰러진다.

 

7. 경호차량으로 정토원주차장 텃밭 컨테이너창고 앞에 도착한 암살자는 이경호관으로부터

노통을 찾아 살해하라는 연락을 받고 도피한 노통을 찾아나선다.

--이때 "놓쳤다. 안보인다"는 경호관 무전기록--

 

8. 목교부근에서 노통(독이 온 몸에 퍼진 상태)을 발견한 암살자는 노통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노통의 늑골과 엉덩이를 타격할 때 노통이 팔로 저항하다 두 팔마저 골절되고 노통은 실신한다.

 

9. 툭! 탁! 소리

암살자는 마지막으로 범행장소에 피가 없도록 노통의 머리를 상의로 돌돌 감은 후에 노통의 머리를 타격한다.

--이때 나오는 타격소리가 마을주민들이 들은 2번, 3번의 소리---

 

10. 머리까지 타격한 암살자는 노통의 시신을 경호차량에 실은 후에, 알리바이(정토원 관계자 외출 통제 알리바이)를 위해 정토원 근처에 가 있는 이경호관에게 연락하여 함께 타고 정토원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이미 정토원으로 올라오는 차량통제, 정토원으로 간 이경호관의 알리바이로 정토원에서도 내려와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원래 암살자는 노통의 시신을 어깨에 메고 부엉이바위 옆 지름길(오솔길)로 부엉이바위밑에까지 가서, 비서관 등에게 투신사고로 위장하여 연락할 계획(06:40)이었으나 부엉이바위옆에서 농부들이 이른 아침부터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계획을 변경하여 노통의 시신을 정토원주차장길로 세영병원으로 옮긴 것이다---

 

11. 정토원찻길을 내려오면서 차량통제 경호원을 태운다.

 

12. 06:30(이씨의 아침 식사 시간)

노통의 시신을 경호차량에 실은 암살자는 정토원주차장을 출발하면서 2명의 경호원에게 안은 장면을 계속 연출하도록 지시한다.

---고추밭 농부이씨 귀가 할 때 안는 장면 목격시간은 이씨의 아침 식사 시간 06:30 이전---

 

13. 23일 06:56경(부엉이바위 주차장에 경호차량이 들어오는 장면 연출)

범행경호차량이 세영병원에 도착(07:00)할 무렵 암살자는 또 다른 경호동 흰색차량을 부엉이바위밑으로 보낸다.

----마늘밭농부 박씨가 흰색차량이 부엉이바위 주차장에 오더니 검은 양복입은 사람이 차에서 내려 "차돌려"라고 외쳤다고 진술------.

 

14. 안는 장면을 연출한 두 경호원은 농부들의 눈에 안 띄게 낮은 자세로 슬금 슬금 경사길을 기어 내려가서 이정표를 잡고 있다가 나무사이로 경호차량 옆문으로 타서, 유유히 주차장을 빠져나간다.

--------마늘밭에서 계속 일했다는 박씨는 주차장에서 차에 사람을 싣는 장면이나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었다고 진술........

15. 23일 07:00(세영병원도착시간)

연출 경호차량의 부엉이바위 주차장 출발 시간(06:59)에 맞춰 07:00에 문사저비서실장에게 사고소식을 연락한 것으로 말을 맞춘다.

 

16. 23일 오전11이전

노통의 머리를 감쌌던 피묻은 상의는 범행 종료후에 현장보존시간(23일 오전11 이전)에 부엉이바위 투신예상장소에 갖다 놓는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699032

사건당일(23일오전 11시이전)에 피묻은 상의를 들고가서 채증하는 장면을 찍은 YTN 동영상(입력시간 23/11/09)이 암살을 은폐하기 위한 조작의 증거이다.

 

또 세영병원간호원이 피범벅이된 노통의 얼굴을 닦아냈다는 익명의 인터넷제보 글에 의해서도 머리 타격 전/후에 상의로 머리를 감싼 은폐의 연관성을 찾을 수 있습니다.

 

17. 6월1일

장례기간(현장통제기간)에 투신장소에 피가 없다는 비판 여론에 맞춰 코피 한 방울 흘린 정도의 피묻은 돌을 갖다놓는다.

이것이 조작으로 드러나자 현장재연일(6월1일) 전/후에 코피 두 방울 흘린 모양의 혈흔을 부엉이바위앞 이정표(안는장면 연출한 후에 낮은 자세로 기어 내려오면서 짚었던 위치)에 묻힌다.

---실제 사람을 업혀서, 오른 쪽 어깨에 메고 확인해 보니 잡을 수 없는, 낮은 위치에 혈흔이 있었음----

 

18. 6월5일

신문방송까지 장악한 경호처(이명박정권의 실세)는 부엉이바위(투신예상지점)와 노통이송 재연주차장(혈흔이정표)의 실제경사거리(48보=20m)를 멀리 떨어진 거리(경찰발표 66m)로 생각하도록 조작하여 공중파로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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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과 지금까지 다음 아고라에 올린 노통암살관련 글 때문에 경찰이 저를 연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정에서 경찰의 노통암살 은폐/조작이 사실로 밝혀질봐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만고의 진리를 체험할 있는 숙제를 노무현은 죽음으로 우리에게 남기셨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필요한 때입니다.

김대중전대통령을 면담하는데 도움을 주실 분은

010-2914-4403, webshindoll@gmail.com연락주세요

 

* 6월 27일, 비서관(노통비서관)이 제 휴대전화(4박5일봉화산현장 조사때 알려준 번호 010-2914-4403)로 전화가 왔습니다. 봉하마을에 내려와서 만나보자는 군요.

그래서 오늘부터 제 실명을 알려야 안전할 것 같습니다. 제 이름은 오승기입니다.

만약 어디서 어떤 사람의 의문사가 있거나 제 휴대전화(010-2914-4403)연락이 안 될 때는 제가 행방불명된 것으로 아시고, 제 가족(010-9102-0328)에게 꼭 연락하여 주십시오.

비서관과의 면담은 타살의혹을 갖고 49재 때 봉하마을에 내려가는 아고라인(민주시민)과 의논하고 결정하겠습니다.

 

현재 경찰은 노무현 암살 사건을 파헤치는 네티즌을 연행하지 못하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연행하는 그 순간부터 "노통암살후 투신자살 위장실패 사건"이 법정으로 비화되어 현정권의 실세 경호처(국정원)가 검찰에 의해 발목이 잡히는 상황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겁먹지 말고, 용기를 내어 빨리 "노통암살후 투신자살 위장실패 사건"을 공개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혹자는 "다음 대선 때까지 기다려라" 정권이 바꿔지면 진상이 쉽게 규명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패배주의/보신주의 산물에 불과합니다. 정치지형상 또 다시 지역주의 세력이 다음 정권을 잡게 되어 더 어려워 집니다.

 

노무현 전대통령의 불상사는 "암살후 투신자살 위장실패 사건"이기 때문에 다음 달이면 노통의 불상사가 모두 밝혀져서 이명박은 하야할 것으로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탄압을 해도 '무섭다' '귀찮다' '내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해 행동하지 않으면 틀림없이 지고 망한다." -김대중전대통령 6월 25일 어록 -

 

아고라여!

민주시민이여!

한민족이여!

일어나라!

노무현의 이름으로 다시 살아나라.

그분이 흘린 고귀한 피를 찾아

노무현의 피에 우리의 눈물을 섞어 남북통일의 밑걸음이 되도록 고이 묻어 드립시다.

코리아통일의 나무가 잘 자라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노무현을 살려내어 전해 줍시다.

 

노무현은 자살하는 성격의 사람이 아니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824947

 

 

* 출처 : 다음 아고라 자유토론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bbsId=D003&articleId=282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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