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개국에서 일어났던 ‘곡물폭동, 한국에서 안일어난 이유.

2014. 2. 22. 12:00진실

◈ 30개국에서 일어났던 ‘곡물폭동, 한국에서 안일어난 이유.

     [김영호칼럼]- 언론도 정부따라 쌀 전면개방 동조하나

 

1993년 12월 UR(우루과이 라운드) 타결에 따라 한국의 쌀시장도 1995년부터 부분적으로 개방됐다. 관세화에 따른 전면개방 대신에 MMA(최소시장접근)에 따라 10년 동안 소비시장의 4% 물량만 개방되었던 것이다. 10년이 지나 다시 2005~2014년 전면개방이 유예되어 MMA에 의한 의무수입물량이 8%로 증가되었다. 이제까지는 5%의 관세를 붙여 의무수입량만 들여오면 되었다. 그 시한이 금년말로 끝난다. 내년부터는 현재처럼 부분개방을 유지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전면개방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가 대두된 것이다. 그런데 언론은 식량안보와 직결된 이 중대한 사안을 외면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이동필이 작년 5월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쌀 관세화가 유리하다…무리하게 관세화 유예를 연장할 수 없다”고 발언한 바 있다. 전면개방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작년 8월 발표한 농촌경제연구원의 설문조사에서도 그 의도가 엿보인다. 여론조사를 실시했더니 응답농가의 77.7%가 관세화를 찬성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응답자의 34.9%는 관세화가 무슨 뜻을 몰랐다고 한다. 농민단체들은 여론조작을 통해 전면개방을 밀어붙인다고 반발하고 있다.

쌀 수출국과 협상시간이 촉박하나 농림축산식품부가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같은 입장인 필리핀이 작년 10월 수출국과 협상을 개시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 협상에서 필리핀은 관세 유예화를 이끌어내지 못해 오는 3월 다시 협의하기로 했다. 농림부의 자세를 보면 괜히 공론화한다고 떠들다 농민들의 반발을 사느니 조용히 있다가 슬그머니 전면개방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 농산당국이 무대응으로 일관하니 언론도 덩달아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가 먹는 쌀은 세계적으로 생산량이 제한되어 있는 중단립종(japonica)이다. 생산국들이 먹고 남아야 수출한다. 그 때문에 막상 세계적인 흉년이 들면 사기 어렵다. 지난 1980년 대흉년이 들었다. 당시 신군부는 민심이 흉흉해지자 수출국에 구걸하다시피 사정해서 사왔다. 시세가 1t당 200달러였는데 550달러를 주기도 했다.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대만, 인도네시아,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에서도 사왔다. 팔지 않자 웃돈을 쳐주고 장기도입계약을 맺어 당장 필요 없는 물량까지 사와야 했다.

   
▲ 1993년 12월 민주당 이기택 대표(가운데)를 비롯한 민주당소속 의원들이 쌀 수입 개방저지 비상대책위 발족식을 마친후 여의도 국회의사당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기상이변으로 세계적 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이상기후 탓에 곡물파동 주기가 점차 짧아진다. 기후변화를 미뤄보면 6년 전과 같은 곡물파동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환경오염, 물 부족 또한 심각하다. 사막화-산업화-도시화에 따라 농지축소와 이농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대체연료로 등장한 식물연료(biofuel)도 곡물파동의 한 원인이다. 인구대국인 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의 육류소비가 증가하면서 사료용 곡물수요도 급증하고 있다.

2008년 곡물파동으로 가격이 폭동하자 30여개 나라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당시 식량수출국들이 곡물을 전략상품(strategic commodity)로 지정하고 수출통제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적인 곡물파동의 무풍지대에서 살았다. 농민들이 경찰의 곤봉세례를 맞아가면서 쌀시장 개방을 반대해 자립기반을 지킨 덕택이다. 그 까닭에 많은 국민들이 식량위기의 공포를 모른다. 만성적인 식량난이 공산주의를 붕괴시켰다는 사실도 잊고 있다. 한국이 식량안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쌀 생산량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도 쌀이 남아도는 줄 잘못 알고 있다. 2007년 27년만에 큰 흉년이 들어 쌀 생산량이 441만t으로 줄었다. 이어 2010년 이후 내리 4년간 흉년이 들었다. 쌀 생산량이 2010년 429만t, 2011년 422만t, 2012년 400만t, 2013년 423만t 으로 급감했다. 쌀 소비량이 갈수록 줄고 있지만 농지축소에다 흉년이 겹쳐 자급률이 80%대로 뚝 떨어졌다. 쌀이 남아돈다고 난리였는데 이제 수입해야만 먹고산다. 북한에 쌀을 지원하고 싶어도 줄 수 없는 처지가 됐다. 곡물자급률이 2011년 22.6%로 전년에 비해 5%p나 급락했다.

전면개방론자들은 WTO(세계무역기구) 농업협정에 따라 두 차례 전면개방이 유예되었지만 2014년 이후에 관한 규정이 없다고 주장한다. 예외 없는 시장개방을 원칙으로 하는 WTO 설립취지에 맞춰 전면개방이 옳다는 것이다. 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물량이 크지 않다고 한다. 반면에 농민단체들은 UR 농산물협정의 후속협정인 DDA(도하개발어젠다) 협상이 아직 타결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고 주장한다. 새로운 추가조치를 취하지 않고 재협상을 하지 않고도 현상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 김영호 언론광장 공동대표
 

전례가 없는 데다 양측의 주장이 타당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두 주장을 충분히 검토할 가치가 있다. 변수는 최대수출국가인 미국의 선택이다. 미국이 세계농업시장 개방을 주도하면서 세계의 가족농을 파괴하고 있다. 그 까닭에 미국이 부분개방보다는 전면개방을 들고 나올 가능성이 높다. FTA는 관세율 0%를 목표로 한다. 한-미 FTA가 체결된 마당에 미국이 고율의 관세를 동의할지도 의문이다.

미국의 값싼 밀에 밀려 이 땅에서 밀밭이 사라졌다. 무분별한 농지축소에 따라 쌀 자립 기반이 붕괴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쌀시장 전면개방은 밀의 전철을 밟는 수순이 될 수 있다. 식량안보를 지키려면 단순한 경제적 논리로 대응해서는 안 된다. 식량주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기후변화에 대비해서도 식량자립기반을 견지해야 한다. 한번 문을 열면 닫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