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년간 로맨틱했던 부부에게 배우는 부부 갈등 해법

2015. 3. 11. 17:40좋은글

레이디경향 | 입력 2015.03.09 14:45

 

인스턴트 사랑조차 두려워 '썸'만 타는 시대에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속의 76년 세월을 해로한 노부부의 사랑은 감동을 넘어 충격이다.

참사랑의 묵직함은 울림이 크다.

영화의 주인공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 98세 로맨티시스트 조병만 할아버지를 통해 다시 한번 부부 관계를 돌아본다.

어딜 가든 두 손을 꼭 맞잡고 간다. 장에라도 가는 날이면 고운 색 한복으로 커플 룩을 맞춰 입고 또 손을 잡는다. 손을 놓기 싫어 버스에 타서도 꼭 뒷자리에 앉는다. 나란히 앉아 손을 잡기 위해서다. 서로의 머리카락을 빗겨주면서도 쉴 새 없이 예쁘다는 말을 해준다. 그 옛날 반한 것도 외모였다면서 말이다. 노래를 불러달라면 노래를 불러주고, 꽃을 꺾어달라면 꽃을 꺾어다 준다. 그래서일까. 할머니는 가끔 하늘의 별도 따달라며 농을 제법 강하게 친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또 옳다구나 하고 두 개를 따다가 하나는 할머니를 주고, 또 하나는 자신이 갖겠다고 한다.

할아버지 장난도 보통은 아니다. 마당 낙엽을 쓸어 모으다가 할머니에게 낙엽 더미를 던지기 일쑤고, 할머니 한복 동정에 붙은 벌레도 바로 떼어주지 않고 할머니를 재미나게 골려준다. 장난도 한두 번이지 할머니는 이내 토라졌다가 부아가 치밀어 눈물을 흘린다. 그제야 할아버지는 애가 타서 우는 할머니를 달래느라 바쁘다. 다시는 안 그렇겠단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내내 하며 할머니를 어루만진다. 그리고 이내 쭈글쭈글 주름진 약지를 걸고 엄지로 도장까지 찍는다. 안방으로 들어와 사랑한다며 양팔로 하트를 만들어 보여주는 것은 할아버지에겐 예삿일이다. KBS-1TV 인간극장 '백발의 연인'이란 제목으로 5부작이 방송되면서 화제를 모았고,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다시 제작돼 조용한 흥행몰이를 했던, 89세 소녀 감성 강계열 할머니, 98세 로맨티시스트 조병만 할아버지 부부의 76년간의 사랑 이야기다.

부부 관계의 핵심은 '부부 중심'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관계는 나이와 시대를 초월해 철저하게 부부 중심이다. 할아버지의 유연한 유머 감각과 할머니의 애정 표현은 차치하고라도 부부의 중심이 서로의 배우자에게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전문가들은 부부 관계의 핵심은 '부부 중심'의 삶이라고 했다. 부부 관계에 정답이 있을 수 없지만 남편과 아내가 중심이 돼 산다면 노년까지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부부가 중심이 되면 서로에게 '당신이 내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라는 애정과 신뢰의 감정을 듬뿍 느끼게 해준다. 이런 부부에겐 성격 차이나 경제 문제, 고부 갈등, 자녀 학업 등 여러 시련이 닥쳐도 서로의 '우선순위'에서 밀리지 않는다고 느끼며 극단적으로 헤어지거나 하는 일도 없다고 한다. 백년해로의 기초가 되는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문가들은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 덕수와 영자 부부를 그 반대의 예로 든다. 이들은 부부 중심의 할아버지·할머니 부부와 완전히 다르다. 부부는 없고 부부의 역할만 있다. 가장 역할, 엄마 역할 말이다. 이 부부는 평생을 일을 중심으로 상황의 역할자로만 보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국제시장'의 부부 싸움 장면을 보자. 고모의 가게를 인수하고 여동생을 시집보내기 위해 월남으로 떠나려는 남편 덕수를 말리며 아내 영자가 "자기 인생에서 자신은 없어?"라고 버럭 소리치는 장면은 부부가 무엇을 중심으로 두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장년층 이상은 과거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받는 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들의 자녀는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 보다 더 부부 중심이 아닌 역할 중심의 부부로 살았다. 역할 중심의 부부들은 결코 노부부처럼 말년까지 정답게 손을 잡고 산책을 하거나 이야기꽃을 피우기 못한다.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도 듣지 않는다. 대화가 여의치 않으면 유머는커녕 애정을 느끼기도 버겁다. 부부가 중심이 되면 무의미하고 사소한 말이라도 남편의 말에,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맞장구를 쳐주는 것만으로도 애정을 느끼기엔 충분하다. 자신의 말을 귀담아들어주는 태도에 사람들은 사랑받고 있음을 가장 강하게 느낀다고 한다.

갈등 해결 일등 공신, 1인칭 화법

부부 문제는 언뜻 두 사람의 문제 같지만 근본 원인을 찾아보면 원 부모에게 받았던 심리적인 결핍 문제를 상대 배우자에게서 찾으려는 양상에서 시작된다. 부모에게 받지 못한 사랑을 배우자에게서 채우려 한다. 어리광을 받아줬으면 하는 구조다. 부부 싸움은 실제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실수에 대한 용서' 차원에서 다가가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대개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는 표피적인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사과를 부부 갈등의 전부라고 본다면 갈등은 더욱 악화된다. '사과를 했는데 왜 또 그러느냐'라는 식의 짜증스러움이 터져 나오기 십상이다.

물론 진심 어린 사과는 꼭 필요하다. 하지만 부부 관계에서는 미안하다는 말만큼이나 응어리가 지지 않도록 속을 풀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속마음을 충분히 표현하게 하고, 또 그것을 다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갈등이라도 완전하게 마무리가 된다. 하지만 보통 부부들은 이 부분에 취약하다. 충분히 감정을 표현하지 못하면 마음속에 쌓아두게 되고, 구체적인 상황은 잊어도 감정만은 찌꺼기처럼 남아서 언제라도 표출된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또 그 소리냐", "예민하다" 등등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하게 된다.

부부 관계에서만큼은 무조건 참는 게 능사가 아니다. '너'로 시작되는 2인칭 화법은 매우 공격적인 인상을 준다. 무시하고 비난하는 것 같다. 부부 관계를 좋게 한다고 본질적인 변화 없이 영화 속 할아버지처럼 장난을 친다면, 그것은 싸우자는 선전포고에 지나지 않는다. 노부부의 애정 표현 말고, 대화법을 다시 한번 보자. 부부는 늘 '나'로 시작하는 1인칭 화법을 사용한다. 어려워할 필요 없다. 사회생활에서 남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떠올려보면 된다.

부부는 이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정서적인 관계다. 신뢰감과 존중감 등 마음의 관계이기 때문에 필히 1인칭 화법을 통해 '내 마음이 이렇다'라는 표현을 해야 한다.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관계라서 더더욱 1인칭 화법을 사용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1인칭 화법만으로도 부부 갈등의 80% 이상을 해결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1인칭 화법을 사용하면 말을 하고 싶어지는 효과까지 있다. 1인칭 화법을 통한 어법 변화는 대화 방법을 바꾸고, 대화의 방법이 바뀌면 부부 소통이 원활해지기 때문에 관계가 좋아진다.

어느 로맨틱한 영화의 주인공보다 애틋한 조병만 할아버지와 강계열 할머니의 76년간 세월이 늘 첫 만남처럼 설레지는 않았을 것이다. 관계를 가꿔가면서 익어가는 따뜻하고 익숙한 애정이 그 세월을 지탱했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유머, 할머니의 맞장구는 결국 대화다. 더 듣고자 하는 대화 말이다.

Mini Interview

"감정 조절 어렵고 폭언, 폭력 충동이 든다면 전문가 찾을 것"
조창현(나우미가족문화연구소 소장)


Q 갈등을 겪는 부부가 전문가를 찾는다는 게 쉽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정법원에 이혼 소장을 내고 헤어지기 전에 많이 찾아온다. 마지막 실마리를 찾자는 심정인 것 같다. 또 남편보다는 아내가 주도해 오는 경우가 많다. 잘못한 남편에게 잘못을 인정하게끔 얼마간은 전문가를 통해 야단을 쳐주고 싶은 심리다. 요즘은 자녀들이 부모님을 많이 모시고 온다. 자녀들이 먼저 전문가를 찾은 뒤, 부모에겐 어디 간다 말하지 않고 모셔오는 식이다.

Q 부부 문제에 있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점이 있다면?

많이 답답하고 화가 나서 감정 조절이 어렵고, 폭언이나 폭력 충동이 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중년 이상의 부부 문제를 보면 남편이든 아내든 되레 착한 사람들이 많다. 효녀, 효자 말이다. 속으로 삭이고 참기만 한 것이 결국 터지는 것이다. 착한 사람들이 폭발을 하니 주변에선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것처럼 취급해버린다. 악순환인 셈이다. 상처받은 이유의 선입견만 가지고 고치려 들면 안 된다. 답답함과 억울함의 호소가 먼저다.

Q 부부 관계 전문가로서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여기는 부부 사례가 있나?

외도의 실체가 현존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혼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외도라는 사실만으로 받는 배우자의 상처와 충격은 엄청나다. 그런데 (외도를) 정리할 의사가 없다면 이혼이 되레 충격을 완화시켜준다.

Q 아내들의 불만은 다양한 경로에서 듣는다. 남편들은 전문가를 만나 어떤 불만을 털어놓는지 궁금하다

대부분 옛날이야기 하는 게 제일 무섭다고 한다. 그런데 아내 입장에선 당연한 거다. 표현을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아내가 풀릴 때까지 들어주는 것이 좋다. 핵심 감정을 충분히 느끼도록 동조해주면서 말이다. 그러면 극복되지 않을 문제가 없다.

Q 부부 갈등 해결에 조언을 해준다면?

결혼보다 이혼이 더 어렵다. 가치관과 삶의 방식이 다른데 부딪쳐서라도 뭐가 다른지, 내 생각이 부적절한지, 상대방의 표현 방법이 부적절한지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면 건강한 관계의 부부가 될 수 있다. 생각이 경직돼 있을수록 상처도 많은 법이다. 그런 감정의 응어리를 배우자나 자기 자신이 풀어줘야 한다. 원 가족과 함께 풀면 더 빨리 풀어질 수 있다. 그런 태도와 자세가 느껴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기획 / 장회정 기자 ■글 / 강은진(객원기자) ■사진 / 안지영 ■도움말 / 조창현(나우미가족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