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원세훈 영장' 싸고 2주째 '몽니'

2013. 6. 10. 23:57시사

황교안 '원세훈 영장' 싸고 2주째 '몽니'

오는 19일 ‘선거법’ 시효 만료… “정권 정당성 문제 우려” 분석

경향신문|조미덥 기자|입력2013.06.10 22:25|수정2013.06.10 22:37

 

 

검찰이 공직선거법 공소시효를 9일 앞둔 10일까지 원세훈 국가정보원장의 사법처리 수위를 결정하지 못했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원 전 원장에 대해 선거법을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데 난색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찰이 멀쩡하게 수사를 해놓고도 황 장관의 '몽니'에 막혀 사법처리가 지연되는 상황이 2주째 이어지고 있다.

검찰은 10일에는 원 전 원장 등의 적용 법조 및 신병처리 방침을 정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공직선거법 공소시효가 오는 19일 만료되는 점을 감안하면 늦어도 10일까지 구속영장 청구 여부가 결정돼야 한다는 '상식적' 판단에 따른 것이었다. 검찰이 이날 원 전 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해도 구속수사 기간은 길어야 3~4일에 불과하다.

그러나 검찰은 이날도 원 전 원장에게 선거법을 적용할지, 구속영장을 청구할지 결정하지 못했다. 당초 검찰은 지난 7일 원 전 원장의
처리방침을 정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불발에 그쳤다. 9일에도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지만 그냥 넘어갔다. 원 전 원장의 처리방향을 놓고 같은 상황이 벌써 몇 번째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10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 출석해 국가정보원의 선거 개입 의혹 수사에 대한 의원들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이런 비상식적인 상황의 핵심에는 황 장관이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윤석열 부장검사)과 대검찰청 지휘부는 지난달 27일 원 전 원장에 대해 국정원 위반과 더불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법무부에 전달했다.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단 댓글 가운데 문재인·이정희 등 야당의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이 발견됐기 때문에 공직선거법 적용이 불가피하고, 국가 정보기관을 선거에 개입시킨 중대 범죄에 해당하는 만큼 구속영장을 청구해야 한다는 게 검찰 수뇌부와 수사팀의 일치된 견해였다. 그러나 황 장관은 '선거법을 적용할 수 있느냐'고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날까지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검찰은 일찌감치 수사를 끝내놓고도 법무부의 처분만 기다리는 상황에 처했다.

검찰은 원 전 원장을 구속하더라도 며칠 만에 기소해야 하는 상황에 빠졌다. 검찰이 공직선거법을 적용하더라도 구속영장은 청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황 장관이 정치적 부담이 큰 '수사지휘권'을 발동하지 않으면서 교묘한 방법으로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사건에 대한 황 장관의 '고집'이 무척 이례적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해석이 분분하다. 당장 황 장관의 '몽니'에 청와대의 의중이 반영됐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원 전 원장이 공직선거법 위반을 적용받아 구속까지 될 경우,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대선의 정당성 문제로 비화할 것을 청와대가 우려한다는 것이다.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른 국정원의 선거 개입은 박 대통령을 옹호하고 야당 후보를 깎아내리는 방향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선거에 미친 영향력의 크기를 떠나,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선거 개입에 따른 수혜자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법조계 관계자는 "중요한 사건을 처리할 때는 으레 법무부 장관이 청와대와 의견 조율을 거친다"고 말했다. 요컨대 청와대가 법무부를 통해 검찰의 수사를 '지휘'하는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이다.

황 장관의 의견이 끝내 관철될 경우 그의 친정인 검찰은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정치검찰' 논란 끝에 바닥까지 추락했다
채동욱 총장의 취임을 계기로 반전의 기회를 잡은 검찰은 또다시 정치적 중립성 논란에 휘말릴 가능성이 커졌다.

< 조미덥 기자 zorro@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