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화상병’ 국내 첫 발병…

2015. 6. 13. 21:18과수관리

 

  우리나라 첫 발병 '화상병'…수출 타격 우려 
              KBS | 임명규 | 입력 2015.06.13. 14:03

 

-치료약 없어 과수농가 비상-  

※ 화상병은 한번 나무에 발생하면 방제가 불가능하고 급속히 확산되기 때문에 증상이 보이면 가까운

     농업기술센터를 통해서 정밀 진단을 받아 즉시 폐기 조치해야 합니다.

 

두 대학 연구팀이 경기도 안성의 배 과수원을 찾습니다. 가지검은마름병 연구를 의뢰받아 말라가는 배나무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 검게 마른 잎이 있어 관찰하던 연구팀은 깜짝 놀랍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형태의 식물병과는 뭔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검다지만 너무 검고 마른 정도도 매우 심했습니다. 언뜻 떠오른 건 '화상병'. 하지만 국내에는 보고 된 적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식물 전염병이었습니다. 서둘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의뢰해 정밀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결과는 우려했던대로 '화상병' 확진. 연구팀은 망연자실했습니다. 이름도 생소한 이 '화상병'은 우리나라 식물방역법상 최상위에 위치한 금지병으로 매우 심하게 주의를 기울여 유입을 막고 있던 외래 전염병입니다. 미국과 캐나다 등 이미 54개국에서 발병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우리나라는 이 나라들의 사과와 배는 전면 수입을 금지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 만큼 배와 사과 농가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전염병으로 정부가 판단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른 나라도 이 병에 얼마나 조심하는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위키피디아에 있습니다. 이름을 밝히기 곤란한 한 나라는 배나무에서 이 질병이 발견됐지만 정부 당국은 공식적으로 존재를 부인하고 있다고 적혀 있습니다. 공식화될 경우 수출에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 농민들도 같은 상황입니다. 우리 나라가 발생국으로부터 수입을 금지해왔던 만큼 우리가 수출하기도 이제는 어려워질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그래서 정부는 대만과 홍콩, 호주 등에 우리 정부의 확실한 대책과 대응을 설명하고 수출에 지장이 없도록 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 이런 광경 "난생 처음"…두려운 '식물 전염병'

그렇다면 정부가 말하고 있는 신속한 대응이란 게 뭘까요? 구제역이 발생했을 때 많이 봤던 '매몰처분'입니다. 나무를 통째로 뽑아 5미터 깊이 구덩이에 묻고 생석회를 뿌리는 겁니다. 이런 방법은 원시적이고 보기에도 안 좋아서 웬만하면 피할텐데요 왜 '매몰'을 택한걸까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1920년 대 미국에서 처음 발견된 걸로 알려진 '화상병'에는 아직까지 치료제가 없습니다. 독한 농약을 쳐도 세균을 죽일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전염력이 아주 강합니다.

 

수많은 곤충이 모두 매개체가 되고 심지어 강한 바람에 날려 세균이 전파되기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택한 가장 확실한 방법이 '매몰'인 겁니다.

 

생석회를 섞는 이유는 수분과 만나 온도를 섭씨 200도까지 높여 세균을 태워주기 때문입니다. 구제역 발생했을 때 매스컴을 통해 많이 봤던 장면이 배밭에서 벌어지게 된 겁니다. 이걸 본 농민들은 어땠을까요? "이런 광경은 배 농사 수십년에 처음"이라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었습니다.

 

배는 심어서 5년이 지나야 수확이 가능하고 수령 40년 정도가 되면 새로 심어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배 과수원은 보통 십년 이상된 경우가 많습니다.

 

안성지역은 특히 배가 주산물이어서 대개 20년 이상 배 농사를 지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 분들이 나무를 매몰하는 광경을 본 적이 없다며 놀랄 정도로 '화상병'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국내 첫 발병이니 생소하기도 했을테고요.

 

일단 매몰 작업은 신속하게 착착 진행되고 있습니다. 40ha가 대상이고 현재 22ha가 처리됐습니다. 그런데 매몰 작업이 다 끝나면 해결해야할 문제가 새로 생깁니다. 먼저 보상 문제인데요, 농촌진흥청은 ha당 첫해 5천여만 원, 둘째와 셋째 해에는 3천여만 원을 보상할 것이라고 합니다. 첫해에는 이미 농약이나 농기구에 투입된 돈이 있을 것으로 간주해 비용을 보전해준다는 의미로 조금 더 준다는 겁니다.

 

그런데 안성과 천안 지역 배농가의 상당수가 임차농이 농사를 짓고 있어 문제가 단순하지 않습니다. 보상금은 토지주에게 지급되는데 이 돈을 얼마의 비율로 임차농과 나눌지는 개별 농가마다 알아서 정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당장은 매몰 작업이 급해 별다른 얘기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작업이 마무리되고 나면 토지주와 임차농 간의 의견차가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장에서도 그런 목소리는 벌써 감지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이 과수원에 앞으로 5년 간은 배나 사과 나무를 심을 수가 없다는 점입니다. 수십년 과수농사를 영위하던 농가가 새 작물을 찾아야하는 상황인데 배나 사과 만큼 안정적으로 지을 수 있는 작물이 많지 않다는 게 이곳 농민들의 걱정이었습니다. 특히 다른 작물로 거둘 수 있는 소득이 배 농사 만큼되기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습니다.

 

● 느닷없는 '전염병'의 등장과 정체…오리무중

농림부도 농민들도 여전히 어리둥절한 상황입니다. 국경도 아니고 해안가도 아니고 부두가도 아니고 공항 근처도 아닌 내륙에서 왜 느닷없이 강력한 전염병이 발병한 걸까? 정부도 서둘러 유입 경로를 조사하고 있습니다.

 

메르스 확진을 질병관리본부에서 하듯 동식물 검역의 최종 권한은 농림축산검역본부에 있습니다. 검체를 확보하고 외국의 세균 표본도 받아 정밀 검사를 해야합니다.

 

그런데 식물의 경우 동물보다 유입 경로를 확인하거나 추정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게다가 화상병에 대한 연구가 많이 돼 있지 않아 거의 새로 하다시피 해야 한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유입 경로를 추정하기까지 시일이 얼마가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올해 말이 돼서야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일단 현재까지 알려진 화상병의 정체는 사과와 배 등 장미과에 속하는 식물 180종에서만 발생한다는 점. 사람에게는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 섭씨 20도에서 30도 넘어서까지 잘 자라고 나뭇가지나 줄기에서 월동까지 한다는 점. 잎과 줄기가 검게 변하면서 말라 죽는다는 점입니다.

 

앞에서 이미 밝혔듯이 곤충과 비바람으로 전염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특징입니다. 치료제도 없고 전염도 잘 되기 때문에 발생 확산을 막지 못하면 우리나라 배와 사과는 지금처럼 흔하기 보기 힘들어질 수도 있습니다.

 

정부도 이 점을 감안해 발생하자마자 전국의 대형 과수원에 대해 일제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 소규모 과수원까지 조사할 엄두는 못 내고 있습니다. 나무 하나하나 꼼꼼이 조사하기에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농민들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배나 사과 나무에서 평소 보지 못한 변화가 발견되면 즉시 신고해달라는 당부였습니다. 메르스 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호미로 막을 걸 우왕좌왕했다가는 가래로도 못 막습니다.

 

'화상병'이 비록 사람에게 직접 피해를 주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사과와 배에는 치명적인 전염병입니다. 우리 땅에서 건강하게 자란 과일을 비싼 값에도 못 먹을 수 있다는 걱정이 단지 기우이길 바랄 뿐입니다.

임명규기자 (thelord@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