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현충원에 안장된 한국인

2017. 8. 20. 10:47인물

 


■ 러시아 '현충원'에 안장된 유일한 한국인

우리나라의 국립묘지, 서울 동작동 현충원에, 항일 투쟁의 공로를 인정받은 한 외국인이 안장돼 있다고 가정해보자. 해당 국가의 국민들은 그 인물을 얼마나 기억할까? 해당 국가의 언론들은 그 인물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질까?

 

노보데비치 외경


백추 김규면 선생을 취재하면서 드는 생각이었다. 백추 김규면 선생은 모스크바의 노보데비치 수도원에 안장돼 있는 유일한 한국인이다.

 

노보데비치 내부


노보데비치 수도원은, 흐루시쵸프 전 서기장,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러시아의 대문호 안톤 체호프, 고골리 등 러시아의 국가적인 영웅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우리로 치면 국립 현충원 같은 곳이다. 일반인의 매장은 금지돼 있다.

 

노보데비치의 김백추


이런 곳에 안장된 한국인은 어떤 인물일까? 선생의 벽면 묘지에는 "극동에서 소비에트 권력을 위한 투쟁에 참가했다"라는 짤막한 문구가 적혀 있다. 그 투쟁이란 것은 또 무엇일까?

수소문한 끝에 모스크바에 살고 있는 선생의 손녀 김에밀리씨를 만났다. 손녀도 이미 84세의 노인이다. 손녀는 다행히 선생의 귀중한 유품 몇점을 소중히 보관하고 있었다.

 

 

건군 50주년 기념 메달 증서(위) / 붉은별 메달(아래)


지난 1933년 구 소련 정부가 선생의 항일 투쟁 경력을 인정한 빨치산 증명서, 소비에트 혁명 50주년을 맞이한 1967년 국가 유공자 훈장과 함께 수여된 '붉은별 메달'. 선생이 1969년 88세를 일기로 돌아가신 뒤, 곧바로 노보데비치에 안장될 수 있었던 근거들이다.

선생은 1920년대 노령 연해주에서 대한신민단, 독립단 등을 조직해 무장 항일투쟁을 벌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독립운동의 영웅이었다. 1924년 5월 임시정부 교통차장 및 교통총장 대리에 선임되기도 했다.

 

건국훈장 독립장


이같은 사실은 수원대 박환 교수가 발굴해 국내에 소개했고, 2002년 한국 정부는 선생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당시 몇몇 국내 언론이 이 사실을 전했으나, 그 후에는 선생의 이름을 국내 언론에서 다시 찾아볼 수 없었다.

 

■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견한 수기

 

블라디보스톡 아르세니예프 박물관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톡에 가면 몇가지 유품을 더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손녀의 말에 따라, 블라디보스톡 아르세니예프 박물관을 찾아가 봤다. 거기서 선생이 돌아가시기 8년 전에 직접 박물관에 기증한 8장의 사진과 기록물 4장을 추가로 확인했다.

 


1920년 연해주 일대에서 활약한 독립군 대원들과 함께 찍은 젊은날의 선생의 모습이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1921년 이만 전투에서 전사한 독립군 대원들의 장례식 사진과 이에 관한 선생의 수기이다.

 

(*** 참고; 이만 전투:
1917년 사회주의 혁명 이후 러시아는 혁명군인 적군과 황제의 군대인 백군으로 나뉘어 1923년까지 내전에 돌입했다. 당시 프랑스와 이탈리아, 일본은 백군을 지원한 반면 독립군은 적군편에 서서 싸웠다. 1921년 12월 초에 우수리 철교 이남에 집결해 있던 백군이 이만을 공격해 오는 것을 필두로 고려혁명의용군대 대원들은 혁명군과 연합하여 백군과 전투를 전개했다. 이 전투에서 독립군 52명이 전사했으나 겨울철이라 3일 동안이나 매장하지 못해 안타까움은 극에 달했다. 이만 각처의 농민들에 의해 임시로 서산에 눈으로 장례를 치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던 독립군들은 1922년 4월 6일, 이들의 시체를 수습하고 추도회를 가졌다.)

 

 

장례식 사진

장례식 사진


선생은 이만 전투에서 숨진 독립군 대원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러시아어로 기록해 놓았다. 윤동선, 두병옥, 김흔권, 김덕근, 엄두선, 이봉춘, 최칠팔....
다소 투박하기 조차한 조선 이름들이 빛바랜 노란 종이 위에 적혀 있었다.

 


선생의 수기

선생의 수기


선생은, 이역만리에서 나라 잃은 슬픔을 안고 숨져간 젊은 독립군 대원들의 죽음이 그토록 애절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훗날 누군가 그들의 이름이라도 기억해주기를 바라며, 한명 한명 그들의 이름을 적어서 러시아 극동의 박물관에 맡겼는지도 모르겠다.

취재를 마치고 나서 백추 김규면 선생 못지않게 젊은 독립군 대원들의 애잔한 사연이 가슴 먹먹하게 기억되는 것은 어쩐 일일까? 내년 8.15때는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가 봐야겠다.

 

 

하준수기자 (ha6666js@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