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첫 '생체 폐 이식'

2017. 11. 17. 22:34 신 바이오. 의학

국내 첫 '생체 폐 이식'..그들은 왜 의사면허를 걸었을까

 입력 2017.11.17. 16:21



지난달 21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유례없는 폐 이식 수술이 이뤄졌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폐를 일부 떼어내 딸 오화진씨에게 이식한 것으로, 뇌사자가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폐를 이식한 이른바 ‘생체 폐 이식’ 수술이다. 이날 의료진 50여 명은 상당한 부담감을 갖고 수술에 임했다. 폐 적출을 담당한 흉부외과 최세훈 교수는 “면허 걸고, 무기징역 위험을 감수하고 수술했다”고 말한다. 국내 '첫' 생체 폐 이식이라는 부담감 때문이라고 하기엔 과하다. 왜 그랬을까?



생체 폐 이식은 엄밀히 따지면 현행법상 불법이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11조 제5항 제1호에는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출할 수 있는 장기가 규정돼있다. 신장 1개, 간, 골수, 췌장, 췌도, 소장까지 단 6개만 허용된다. 살아있는 사람으로부터 적출할 수 없는 장기를 떼어낸 사람은 무기징역 또는 2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만약 이를 위반해 누군가가 숨진다면 사형·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아산병원은 상당한 위험 부담을 안고 수술을 감행했다. 국내에서 안 된다면 일본으로 가서라도 폐를 떼어주겠다는 오씨 부모님의 강력한 의지, 그리고 성공적으로 수술할 수 있다는 병원의 자신감이 있기에 가능했다.
 
올해 스무 살인 화진씨는 고교 2학년이던 지난 2014년 갑자기 숨이 차고 몸이 붓기 시작했고, 2015년 원인을 알 수 없는 폐고혈압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지난해엔 심 정지를 겪을 정도로 증상이 심해졌다. 지난 6월 장기이식센터에 뇌사자 폐 이식을 신청했지만,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해 기준 폐 이식 평균 대기 시간은 1456일로, 약 4년을 기다려야 한다.

화진씨의 부모님은 계속 건강이 나빠지는 딸에게 자신들의 폐라도 주겠다고 했지만, 국내에서는 수술이 불법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생체 폐 이식 선진국인 일본으로 가려던 중 생체 폐 이식을 준비하고 있던 서울아산병원과 연결됐다. 화진씨의 아버지는 “이미 한 차례 심정지가 왔고 언제 또 상태가 나빠질지 알 수 없는 급박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방법을 찾았다는 것만으로도 너무 기뻐 두려움은 느낄 새도 없었다”고 말한다. 화진씨에게는 생체 폐 이식이 사실상 ‘마지막 희망’이었던 것이다.
 
상당한 위험을 부담해야 했기에 병원 내부에서 일부 반대 의견이 나오기도 했지만, 모두 설득했다. 서울아산병원은 병원 내부 의료윤리위원회는 물론, 보건복지부의 장기등 이식윤리위원회, 대한이식학회, 대한흉부외과학회 윤리위원회에 생체 폐 이식이 불가피한 화진씨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실상 허가를 받았다. 보건복지부는 일정 절차를 밟은 뒤 시행령을 개정해 살아있는 사람에게 적출할 수 있는 장기에 폐를 포함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한 상태다.
 
이번 수술을 집도한 흉부외과 박승일 교수는 국내 장기 이식 역사에서 수술이 이뤄진 뒤 법 개정이 뒤따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말한다. 김수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뇌사가 인정되지 않았던 1988년 국내 첫 간이식 수술을 감행했다. 당시 법에 따르면 살인죄가 성립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2012년에는 서울아산병원에서 7세 소녀에게 위를 포함한 7개 장기를 동시에 이식하는 수술이 이뤄졌다.



 때까지만 해도 위와 십이지장·대장·비장 이식은 불법이었다. 올해 2월에는 30대 남성이 뇌사자의 팔을 이식 받았는데, 이식할 수 있는 장기 등의 범위에 손과 팔을 포함시키는 법률 개정 작업은 현재 진행 중이다. 서울아산병원은 2012년부터 생체 폐 이식을 허용해달라고 계속 요구해왔지만, 법 개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한다. 폐 이식을 기다리다가 숨지는 환자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이번에도 ‘先 수술-後 법개정’을 감행한 것이다.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에 한때 수술을 거부했던 화진씨는 빠른 속도로 회복하고 있다. 중환자실에서 나와 1인실에서 지내며 천천히 걷는 연습을 하고 있다. 서너 걸음만 걸어도 숨이 찼는데, 이제 숨이 차지 않는다고 한다. 예전엔 말수가 적고 잘 웃지 않는 환자였는데, 수술 후 밝은 웃음을 되찾았다. 스무 살 화진씨에게 웃음을 돌려준 이는 어떻게든 마지막 희망을 살리려고 애쓴 부모님과 위험을 무릅쓴 의료진이다. 법이 한 걸음만 더 빨리 움직여줬다면, 좀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남주현 기자burnett@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