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지도]우리민족사의 강역변천도

2014. 7. 17. 07:34진실

<우리민족의 역사적 강역 변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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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사연구회] 영토변동도

아래 지도의 맨 위 좌측의 구리(九黎-환웅)시대는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천자국 '치우천왕'이 속한 왕조인 배달국 즉 '구리국'을 말합니다. 이 강역도는 지나사서 25사등과 고려,조선사서의 연구결과 입니다. 아래의 또 다른 강역도와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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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위치한 낙랑국은 한사군의 낙랑군이 아닌 최씨 낙랑국으로 우리민족이 세운 국가입니다. 열국시대(列國)지도를 보게 되면 지나 동해안 고구려 밑 예(濊) 좌측에 위치한 곳이 바로 낙랑군의 실제 위치입니다.

倭 역시 지나 25사와 삼국사기 등을 분석할 때 현재의 일본열도에 위치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일본열도는 고조선과 고려(고구려)의 땅이었다가 후에 백제의 담로가 됩니다. 그리고 明이 건국하면서 주원장에 의해 대륙 倭의 역사를 하사받아 차용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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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너무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백제는 대륙에 있었고 한반도의 백제는 22담로 중 하나라는 것이 실제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래 지도의 4세기 초에서 5세기 중반의 고구려의 강역은 실로 엄청났으며 이시기가 실제로 우리민족의 통일시기였습니다. 이 고구려의 영향력은 이후에도 지속되어?7세기?당태종이 연개소문에 쫓겨서 강소성의 염성 건호현에 있는 한 우물에 숨어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몽롱탑의 전승과 설인귀 응징 전승은 지금도 지나 강소성일대에서 널리 회자되고 있고 그들의 경극에도 반영되어 지금까지도 공연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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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태종이 우물에 숨어 들어 연개소문의 추적을 피했다는 강소성 건호현의 몽롱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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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민간전승은 역사를 왜곡한다고 해서 숨겨지는 것은 아니라는데? 지나측의 고민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양식이 있는 지나 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지나의 역사는 조선의 역사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이가 주은래 전 수상이지요. 즉 5세기 중반에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부용국으로 두는 통일을 하고 후에 백제와 신라가 복국을 하며 그 시기에 광복백제와 광복신라가 한반도에도 담로형태와 분국형식으로 반도백제와 동신라를?설치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백제의 왕년표는 대륙백제와 반도담로가 뒤섞여 뒤죽박죽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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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도 왕호가 여러번에 걸쳐서 바뀌는데 이는 대륙신라와 동신라의 계보를 한데 섞어 뒤죽박죽으로 기록한데서 오는 혼란인 듯합니다. 특히 마립간으로 불리워진 신라의 수장칭호는 즉 '간'은 고구려의 지방관리에게 불려지던 호칭이라는 점에서 최씨 낙랑국 이후 5세기 중반까지 한반도는 고구려 땅이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강력했던 고구려는 7세기 경에도 연개소문 당태종전승에서 보듯이 지나 강소성 영역까지 그 판도에 넣고 있을 정도로 강력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제 때?티벳지방까지 경략했다는 사실이 지나 25사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그 최대판도는 상상을 절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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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古朝鮮의?강역-지리 이해를 돕는 지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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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에 보면 '북해지우(북해의 모퉁이)'라고 쓰인 곳이 고조선의 강역의 중심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고조선의 위치가 만주일대이거나 발해만 근처(산해경의 '동해지내북해지우'라는 기록을 오늘날의 개념으로 지나쪽의 동쪽바다 즉 서해바다의 북쪽인 발해만 근처로 지레 비정한 식민사학의 관점)라는 것과 비교해 볼 때 대단한 차이가 있습니다. 저 강역은 현재의 산서성일대와 하북성일대를 포함해서?지나 동해안인 산동일대, 내몽골, 요동 , 만주 및 한반도 일대를 다 포함하는 엄청난 크기의 영역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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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내몽골 자치구에 있는?홍산에서(구리국 또는 배달국)?비로소 시작된 문명은 초원 고지대를 타고 고조선으로 이어져 서남.동남으로 퍼져 나갑니다.?아래 산해경의 맨 우측?문장 첫머리에서 '東海之內北海之隅有國名曰朝鮮(동해 안쪽 북해 모퉁이에 나라가 있었는데 그 이름을 조선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 산해경에 기록된 나라가 바로 단군조선이며 후세에 근세의 조선과 구별하기 위해?부르기 시작한 고조선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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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지도상에서도 보았지만 동해,남해,북해를 현재의 바다로 대입하면 큰 오산입니다. 당시 황하는 바다로 불렸습니다. 3000년 전 이상에 쓰이던 한자를 모아놓은 금문에 보면 '海'라는 한자는 현재와 같은 '바다'의 의미가 없고 후대에 'sea'라는 의미가 부가된 경우입니다. 고조선시대는 지금으로부터 3000년 전 이상의 시기이기 때문에 '海'가 현재와 같은 의미로 쓰였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금문에 보게되면 海(해)자의 원형은 놀랍게도 바다를 뜻하는 글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뜻하는 글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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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해) - 금문(金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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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海(해)]자의 고대한자는 위와 같습니다. 왼쪽에 흐르는 강(水)이 있고 오른쪽에 [여성지도자]가 있습니다. 즉 두팔을 들고 사람들에게 말하는 모습. 여성은 아이를 키워야하기 때문에 가슴이 남성과 다르고 그래서 고대한자는?[여성지도자]를 흔히 저렇게 상형합니다. 따라서 海자가 고대로부터 '바다'를 의미한다고는 볼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강옆에서 샤먼의식을 행하고 있는 여인을 상징한다고 보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의 마고신화와도 깊은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고 여제사장의 옆을 흐르고 있는 강을 주목할 때는 오히려 고대에는 '강'이라는 의미로 쓰였을 개연성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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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晉 郭撲(진나라 곽박)의 <山海經>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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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淮南子(회남자)에서 古朝鮮?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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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의(우측 기록) 古竹國(고죽국)山西 西南端에 있고 그 북동쪽에 갈석산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측의 왜곡으로 갈석산이 요동으로?조작되어 잇습니다. 즉?동이족의 나라이자 고조선의 제후국이던 고죽국의 위치를 요동으로 왜곡해서 고조선의 강역을 축소하려는 지나측의 의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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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北海,東海는 바로 산서성 서안 기준이므로?당시 대해의 개념은 희박하여 나올수 없고 黃河라 판단합니다.?즉 지도상에 표기된, 보통 강단사학자들이나 지나측이 주장하는 고조선의 위치에 대한 기존의 학설을 주장하기 위해 동해는 지나 산동반도 부근의 바다를 말하고 북해는 그 위인 발해만 근처로 비정한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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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산서성 갈석산 남서쪽에 있는 고죽국은?한식의 기원으로 유명한 백이숙제의 나라이고 그들의 묘가 있습니다. 즉 한식의 오리지널 저작권은?동이족의 나라인 고죽국에 있고 그 상속인은 우리 한국인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나에 대한 사대가 심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민족이 만일 집단무의식 속에 백이숙제가 동이족이라는 각인이?없었다면 수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렇게 정성들여 한식에 성묘를 갈까요? 즉 백이숙제가 지나족이었다면 우리는 한식을 그렇게 정성스레 계승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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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지도상 우측 상단의 요동지방의 碣石(갈석)은 허구이고 좌측 중단의?바로 산서성 북동단 오대산 좌측 恒山(항산)이 원 갈석산(위 지도에서는 빨간 장방형 네모칸에 喝石山으로 표시된 곳)입니다.?갈석산은 소위 허구의 한사군위치를 비정하기 위해서도 대단히 중요한 곳입니다.(이 카테고리에 한사군의 위치에 대해 정정한 포스팅이 있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클릭] 낙랑군은 산서성 남부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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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浿水(패수) 즉?친일강단사학에서 말하는 대동강이 패수라는 것은?허구이고 패수는?지나 산서성에서 하남성으로 내려가 황하와 만나는 沁水(심수) 혹은 瀧水(용수) 부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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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김병기 교수의 고조선 강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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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로서의 고조선 강역-위>

이덕일, 김병기교수는 위와 같이 이병도의 고조선의 영역해석에서 진일보하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하북성 서쪽과 남쪽이 축소되어 그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덕일, 김병기 교수는 위와 같이 이병도의 고조선의 영역해석에서 진일보하고 있고 정확한 싱증유물의 출토를 근거로 해서 학설을 세웁니다. 그러나 '요서문명' 즉 현재의 하북, 산서성까지의 고조선 유물, 문화출토와 산동성 이남의 고조선 유물을 지나가 숨기고 은폐하고있다는 것을 간과할 때(그리고 지나는 연나라와 제나라의 초기영역을 하남에서 하북으로 고의로 끌어 올림)실제로 고조선 영역은 실로 어마어마하게 클 것이고 그 영역은 지나대륙의 70프로 이상을 차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패수=열수=난하=조백하로 본다면 그 서쪽까지가 고조선 강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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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서 교수의 위만조선-한나라 전쟁도]

김종서?교수는 강단사학자로서는 드물게 친일사학자들에 맞서서 독자적으로 학설을 펴는 사람입니다. 아래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전쟁을 그린 지도인데 비교적 팩트와 근사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위 지도상에서 고조선의 제후국에 불과한 위만조선의 영역이 너무 크고 위치도 더 서쪽으로 옮겨가서 패수와 위수 중간 지역에 위치해야 하지만 비교적 정확한 衛滿朝鮮과 漢과의 전쟁루트를 보여주고 있으며 漢육군은 태행산맥 고지대에서 동단에 산서성?계곡 저지대로 빠져나와? 패수방향으로 진공했을것이고, 수군은 汾水를 통해 황하하류로 나와서 浿水로 진공하였을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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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지식을 알고 있어야 추론이 가능합니다 ,산동성에서 수군이 출발하였다거나 산동성에서 한반도로 출발하였다는 것은 군사전략가에게 물어보면?즉시 해답이 나오는 바보같은 군사전략입니다.?바로 병참이 연결이 안되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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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전략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경험의 산물이며 당시 자연적 지형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수군은 이 전쟁에서 참패해서 참전한 6장수가 기시형(사지를 찢어죽인후 성안에 버려둠)을 한무제로 부터 당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누가 전쟁에서 승전했는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알수있겠지요. 사마천의 '사기'는 조작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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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고조선시대 부터 조선조까지 현재 발견된 지나 25사에 비정된 한민족의 영역을 분석하고 위에 소개한 강단 및 재야사학계의 연구성과를 망라하여?구성한 우리민족의 강역고입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개정은 계속될 것입니다. 본 영토도는 왕조 점유지역의 누적 합계 입니다. 단 몇 개월이라도 점유했다면 그나라 영토에 포함됩니다, 위 우리민족사 연구회의 강역도와 비교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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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역사 보이는 흔적 카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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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슈뢰딩거의 고양이
글쓴이 : 레이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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