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함 구조 합의각서, 세월호를 ‘좌초선박’으로 표기

 

‘해군참모총장’ 대리 서명까지 “언론보도 보고 작성” 신상철 “좌초가능성 암시”
입력 : 2014-05-25  16:14:06   노출 : 2014.05.25  16:14:06
조현호 기자 | chh@mediatoday.co.kr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 해군본부와 방위사업청, 대우조선해양이 작성한 통영함 등의 구조지원 합의 각서에 세월호 침몰원인을 ‘좌초’로 표기했던 것으로 확인돼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방위사업청이 김광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제출한 방위사업청 공문과 합의각서를 보면, 사고당일인 지난달 16일 이용걸 방위사업청장(대리서명 이정재 상륙함사업팀장), 고재호 대우조선해양(주) 대표(오기창 이사), 황기철 해군참모총장(최양선 해군 기획관리참모부 1차장)이 청해진함 및 통영 구조참가 합의각서에 서명했다.

이 공문의 제목은 ‘청해진함 및 통영함 좌초 선박 구조참가에 관한 합의각서 통보’로 돼 있으며, 각서 이름도 ‘청해진함, 통영함 진도근해 좌초선박 구조 참가에 관한 합의각서’로 쓰여져 있다.

방위사업청은 해군과 대우조선해양으로 보낸 이 공문에서 관련근거에 대해 “진도여객선(세월호) 침몰 사고 발생”, “해본 전력3과-2525호 청해진함 및 통영함 여객선 침몰현장 긴급 지원지시(요청)”이라고 썼다.

   
방위사업청이 작성해 통영함 좌초선박 구조참가 합의각서를 통보한 공문
 
합의각서에서 방사청과 대우조선해양, 해군본부는 “청해진함, 통영함 진도근해 좌초선박(세월호) 구조 참가를 위해 방사청, 대우조선해양 및 해군은 아래사항에 대해 상호 합의한다”고 밝혔다. 이들의 선박구조 참가기간은 4월 16일부터 종료시까지이며, 참기 경비는 정산 후 수정조치하며, 통영함 등의 조함권을 해군으로 인계한다고 돼 있다. 방위사업청은 선박구조에 필요한 사항을 적극 협조하고 함 건조 공정은 조선소와 협조하도록 했으며, 대우조선해양은 선박구조 참가와 관련된 사항은 해군과 협조한다고 밝혔다. 해군도 조함권 및 장비운용 관련사항은 조선소와 협조하고 출입항 관련 현장요원을 지원한다고 역할을 기재했다.

김광진 새정치연합 의원도 지난 21일 국회 긴급현안질의에서 정홍원 총리를 상대로 “4월 16일 당일 해군참모총장, 방위사업청장, 대우조선해양 대표는 ‘통영함 좌초선박 구조 참가에 관한 합의각서’에 서명하고, 합의각서에도 ‘진도근해 좌초선박(세월호) 구조참가를 위하여’라고 명확하게 이유를 적시했다”고 밝혔다.

사고원인에 대해 지금까지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과적으로 인한 선체 복원성 훼손으로 보고 수사중이며, 언론들도 복원성 탓으로 보도해오고 있다.

세월호를 왜 좌초선박으로 기재했는지에 대해 방사청은 사고 당일 많은 언론이 좌초라고 보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썼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해군참모총장 대리 서명까지 나와 있는 각서에 ‘좌초’의 의미도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쓸 수 있겠느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25일 세월호 조난 사고시 '군의 시간대별 조치사항'을 보면, 목포의 해군 3함대는 최초상황을 오전 9시3분에 전남도청으로부터 접수했으며, 9시7분에 서해해경청으로부터 세월호 침몰 및 구조지원 요청을 접수받았다. 이후 해군작전사령부는 9시9분에 유도탄고속함과 고속정 편대를 출항했으며, 14분엔 목포에서 고속정이  긴급출항했다. 합동참모본부는 9시15분에 해작사로부터 최초상황을 접수해 국방부에 상황을 전달했다.

   
통영함 진도근해 좌초선박 구조참가 합의각서
 

   
통영함 진도근해 좌초선박 구조참가 합의각서
 
백윤형 방위사업청 대변인은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실무자들이 각서를 작성한 시간은 지난달 16일 낮 12시 다 돼서였으며, 초안은 오후 1시반에 작성됐다”며 “언론에서 좌초됐다고 보도가 많이 나와 ‘진도인근 좌초선박(세월호)’라고 쓴 것이라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백 대변인은 “당시까지만 해도 원인이 무엇인지 명확히 나온 것도 없는데다 언론에서는 좌초라는 보도가 많았다”며 “이 때문에 당시엔 좌초라는 말이 큰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어서 그렇게 썼을 뿐 원인 판단을 하고 작성할 상황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이를 두고 해양전문가 출신인 신상철 서프라이즈 대표는 25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해군참모총장 이름이 나오는 문서에 ‘좌초’가 아닌데 좌초라고 썼을 리가 없다”며 “당시에도 대부분 침수에 의한 침몰이라는 분석이 있었는데, 이번 합의각서 내용에 ‘좌초선박’이라고 작성된 것은 어디선가 좌초든 파공이든 침수의 흔적이 있었음을 암시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신 대표는 “지금까지 나온 세월호 선저의 상태만으로는 좌초의 흔적이 없으나 좌현의 선저는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며 “복원성 훼손도 주된 요인이지만, 이를 더욱 가속화시킨 다른 요인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규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신 대표는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선체에 대한 증거보전 가처분신청을 낼 계획이다.

   
침몰중인 세월호.
 
한편, 세월호 구조를 위한 통영함 출동 합의각서까지 쓰고 해군참모총장이 출동명령까지 내렸는데도 통영함이 출동하지 않은 이유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다. 김광진 의원은 “함정사업본부장을 역임한 대한민국 함정의 최고 전문가인 해군참모총장의 지시가 3시간만에 번복됐다”며 “대한민국에서 해군참모총장의 명령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 도대체 누가 그리고 왜, 이 배를 투입하지 못하게 했느냐”고 따졌다.

백윤형 방사청 대변인은 “그것은 해군이 결정한 것이며, 우리는 출동준비를 해준 것”이라며 “배가 건조돼서 시운전만 해봤을 뿐인데다 승조원 훈련도 안된 상태에서 출동하는 것은 문제라고 판단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백 대변인은 “통영함엔 잠수를 위한 감압챔버가 1개 밖에 없어서 평택함과 청해진함을 보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