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이종찬의 회고록

2014. 10. 4. 10:11인물

高宗을 중국으로 망명시키려던 할아버지의 계획은…[2014-08-23 03:00:00]

김대중 정부 초대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78)은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1910년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 병합되자 이종찬의 할아버지 우당 이회영(友堂 李會榮) 선생의 6형제는 40명이 넘는 식솔을 모두 이끌고 만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투신한다. 신흥무관학교는 우당 형제의 노력으로…

 

“소위 독립운동 집안이란건가” 면접관 말투에 분노가… [2014-08-30 03:00:00]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학생들 사이에 일종의 ‘사관학교 붐’이 일어났다. 아마 직접적인 이유는 당시 정계의 제2인자였던 이기붕 국회의장의 장남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양자인 이강석 군이 육사를 지원한다는 소식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나의 육사 지망은 그것과 상관없었다. 당시 나…

 

“누가 혹시 그 서류를 뺏으려고하면 권총으로 쏴도 되네” [2014-09-06 03:00:00]

1962년 5월 24일, 나는 정확하게 오전 10시 국가재건최고회의에 도착했다. 총무처에 들어가 인사를 하니, 당장 12층 유원식 장군 방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유원식 장군은 체구가 몹시 뚱뚱하고 키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그동안 보아 온 장성들과 달랐다. 눈에서 빛이 났고…

 

中情에 울린 전화벨 “입안 혀처럼 놀던 자들이 반기를…” [2014-09-13 03:00:00]

국가재건최고회의 전체회의에서 ‘긴급통화조치…

 

“미국이 원조를 끊겠답니다”… “끊을 테면 끊어보라지” [2014-09-20 03:00:00]

송요찬 내각 수반의 사표는 천병규 재무장관의 동반 사퇴로 이어졌고, 유원식 장군의 입장도 점점 어려워졌다. 미국 대외원조기관인 유솜(USOM)의 킬렌 처장은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압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유 장군은 또 조상호 중령을 대동하고 최고회의의 옆 건물(현 미 대…

 

“3선이 끝이라는 선언… 누가 각하 목에 방울을 달 건가” [2014-09-27 03:00:00]

“우리는 모두 ‘박정희교(敎)’의 신도가 돼야 한다.” 1970년 12월 22일 취임한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의 일성은 전임 김계원 부장과 달랐다. 이후락 부장 취임과 함께 71년 대통령선거대책도 활발해졌다. 공화당의 백남억 의장, 길재호 사무총장, 김진만 원내총무, 김성곤 재정…

 

“김우중이 보안사 연행됐어… 윤필용과 가까이 지냈나봐” [2014-10-04 03:00:00]

1971년 대통령 선거 직후, 나는 중앙정보부 보안차장보 강창성 장군에게 육군소령을 끝으로 예편하겠다고 신상건의를 했다. 강 장군은...

 

 

 

 

월남 형무소서 온 쪽지… “각하, 저희들을 구해주십시오”[2014-11-01 03:00:00]

사실 나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전두환 대위를 만나본 이후 그가 보안사령관으로 취임할 때까지 거의 볼 일이 없었다. 10·26과 12·12 직후 근 20년 만에 그를 찾아간 것은 김재규 부장 시절의 특별 임무 때문이었다. 1979년 초 해외공작국에 근무하고 있던 나는 사무실…

 

 

 

 

“정치1번지에 구시대 인물 안돼… 선배님이 맡으시죠”[2014-12-20 03:00:00]

1981년 1월 초 나는 정신없이 바빴다. 정치일정상 1월 15일까지 창당대회와 대통령 후보지명을 끝내야 2월 대통령선거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지구당 조직책 인선작업에 속도를 냈는데 서울, 그중에서도 종로·중구는 어려웠다. 정치1번지이기 때문에 웬만한 사람은 성에 차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