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보현의 오상의학

2015. 5. 30. 19:47인물

 

백보현: 향리에 숨어 약과 침으로 숱한 환자 살린 오상의학 달인

연구소 < 향토명의
 
오운육기에 근거하여 오상체질의학 정립│체질에 따라 약과 침 처방 달리 해│곱사등 펴는 등 수많은 구료 일화 남겨│인근 사람들 명의로서 널리 칭송│전통 선비무술인 비금생법에도 달통│예전의 선비들 무공 닦기 위해 평소에 비금생법 수련│무공 완성되면 역발산기개세의 엄청난 파괴력 뿜어져 나와.....

백보현 옹

 

전통 선비무술 비금생법
비금생법(飛禽生法)은 예전에 선비들 사이에서 수련되었던 무술이다. 몸을 이리저리 유연하게 움직이다가 일순간에 비호처럼 손질·발질을 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모습은 우리 전통 무술의 하나인 태껸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전신에 기(氣)를 넣어 몸을 마치 쇳덩이처럼 만들어 힘이 넘치는 공격과 방어를 한다든지, 어떤 자세에서이든지 간에 전신의 모든 신체 부위를 이용하여 상대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면 태껸과는 다른 점이 있다. 그리고 30미터 거리를 일순간에 움직이며 공격과 방어를 하는 등 행동반경이 넓다든지, 용보법·호보법·학보법·매보법 등 보법이 다양한 것도 태껸과 다른 점이다. 또 권법을 주로 사용한다는 점과 넘어지거나 뒹구는 동작이 없이 항상 공격이 가능하도록 선 상태에서 동작이 이루어지는 것도 태껸과 다른 점이다. 이 밖에 때로는 상대를 업어치기도 하고, 때로는 수십 근의 철장(鐵杖) 등을 휘두르기도 하는 모습 또한 태껸과 다르다.

이렇게 몸을 비호처럼 움직이고, 몸을 강철과 같이 단단하게 만들고, 수십 근의 철장을 날렵하게 휘두르고, 전신에서 강력한 힘을 분출하기 위해서는 어느 무술이나 그렇겠지만 내공(內功)의 완성이 필요하다. 그런데 때로는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육중한 바위 덩어리가 부딪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비호처럼 움직이는 비금생법의 무술을 보노라면 그 속에 고도로 수련된 내공이 잠재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무튼 기가 충만된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은 실로 엄청나다.

 

예전의 선비들 평소에 비금생법으로 무공 닦아
따라서 태껸이 민중들 사이에서 건강과 호신을 위해 행해졌던 방어적 개념의 무술이라면, 비금생법은 예전의 무인(武人)이 전쟁터에 나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갈고 닦았던 공격적 개념의 무술이라 하겠다. 예전의 전쟁이 몸과 몸의 일부인 칼로 승부를 겨루는 전쟁이란 점에서 장군이라면 출중한 무공(武功)이 있어야 할 터인데, 그 무공을 연마하기 위한 방법이 바로 비금생법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 선비들이 평소에 무공을 수련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경지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역사적인 예를 보더라도 일부분 짐작할 수 있다. 일례로 춘추전국시대에 서당의 훈장이었던 관운장은 전쟁터에서 82근의 청룡언월도를 날렵하게 휘두르며 적장의 목을 단칼에 베어 올 정도의 맹장이었다. 또 이순신 장군 역시 임진왜란을 맞아 1백90센티미터가 넘는 장검(長劍)을 휘두르며 왜군의 기세를 꺾은 무인이었지만, 평소에는 시문(詩文)에도 출중한 문인이었다. 또한 청산리 전투에 빛나는 김좌진 장군 역시 맨손으로 일본군을 때려눕힐 정도로 힘이 장사였지만, 평소에는 서당을 열어 학문을 가르치고 집안의 노비를 모두 풀어 줄 만큼 학식과 도량을 갖춘 선비였다.

 

역발산 기개세의 위력을 지닌 비금생법 무술
이렇게 선비였던 관운장이나 예전의 장군들이 엄청난 무술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을 단순히 예전의 장군들이 타고난 장사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평소에 비금생법과 같은 방법으로 무공을 갈고 닦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 추론할 수 있다.

물론 관운장이나 예전의 장군들이 비금생법으로 무공을 연마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때로는 유연하면서도, 때로는 강철 같은 몸으로 비호같이 상대를 제압하고, 때로는 내공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으로 철장을 부러뜨리는 역발산 기개세(力拔山 氣蓋世)와도 같은 비금생법의 위력을 보면 예전에 무인들이 무공을 닦기 위해 비금생법과 같은 무술을 행했으리라 인정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 속에서 예전의 장군들이 지녔던 무공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개념을 짐작하게 하기에 충분하다.

 

수련 완성되면 몸이 쇳덩이 같고 비호같아져
비금생법의 기본 수련법은 앉은 상태에서 손과 상체에 기를 넣는 수련, 기립 상태에서 다리와 전신에 기를 넣는 수련, 호흡법으로 단전에 기를 모으는 수련으로 나뉜다. 단 손에 기를 넣을 때는 팔꿈치까지만 넣어 자물쇠 채우듯이 하고, 어깨는 부드럽게 한다. 그래야 실에 쇠구슬을 매달아 돌리는 격으로 강력한 힘을 폭발시킬 수 있다. 이 기본 수련법을 강신술(强身術)이라 한다.

2차 수련법으로는 발차기 수련, 손으로 나무치기 하는 수련, 한 발로 서서 기체조를 하며 중심 잡기를 하는 수련, 공격과 방어를 위한 중심 이동 수련이 있다. 그리고 기의 단련을 위해 냉방에서 잠을 자기도 하고, 냉온욕을 하기도 한다.
이 2차 수련법을 무공술(武功術)이라 한다.

비금생법의 강신술과 무공술이 완성되면 온몸이 단단한 쇳덩이가 되어 맞아도 아프지 않고, 추워도 춥지 않게 된다. 또 온몸이 단단하여 상대의 공격을 맞부딪쳐 막는 것 자체만으로도 상대에게 심한 타격을 주게 된다. 그리고 몸이 붕붕 날 정도가 되고, 몸놀림은 비호같아져 상대가 어떻게 공격을 받고 자신이 쓰러졌는지 모를 정도가 된다.

이 비금생법에 대한 기록은 현재 남아 있지 않다. 전수자 또한 거의 없는 형편이다. 단지 경기도 시흥에 사는 백병찬(白秉贊 취재당시 48세) 씨가 그의 조부 백보현(白寶鉉 1969년 78세의 일기로 작고) 옹으로부터 전수받아 맥을 잇고 있을 뿐이다.

 

 

비금생법─용보법

비금생법─검법




◀백병찬 씨가 비금생법의 용보법을 시연하는 모습(좌)과, 검을 이용하여 나는 듯이 공격해 들어가는 모습(우).

 

 

임경업 장군도 비금생법의 달인
백병찬 씨에 따르면 그의 조부 백보현 옹은 생전에 비금생법을 선비들의 무술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즉 선비들이 책을 읽어 문과에 급제하기도 했지만, 비금생법을 익혀 무과에 나가기도 했다고 한다. 따라서 예전의 장군들과 고승들 중에는 비금생법의 달인이 많았다고 한다.

일례로 그의 조부 말에 의하면 임경업 장군도 비금생법의 달인이었는데, 임경업 장군이 숨을 한 번 내쉬어 칼을 휘두르면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9번 돌릴 정도로 비호같았다고 한다. 이렇게 되려면 사람의 몸이 새털처럼 가볍게 거의 공중에 뜨다시피해야 가능하다고 한다.

 

의분 참지 못해 일본인 때려눕히고 피신 생활
그의 조부 또한 비금생법의 달인(達人)이었는데, 장정 15~20명과 동시에 겨루어도 거뜬히 감당하였다고 한다. 인근의 내로라하는 장사들도 모조리 그의 조부를 당하지 못하였다. 장정들과 겨룰 때면 일순간에 장정 2~3명을 쓰러뜨리는 등 몸이 종횡무진으로 날았다고 한다.

그의 조부는 충청남도 부여군 장암면 원문리에서 출생했다. 그곳에서 비금생법과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의술을 익히며 10대 시절을 보내다가 20세 무렵에 예산으로 이주하여 병자를 고치며 생활하였다. 당시 침과 약으로 병을 신통하게 잘 고쳐 인근에서 환자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항상 일본인과 다툼이 심하여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다 한번은 의분(義憤)을 참지 못하여 일본인을 때려눕히고, 의기투합한 친구 11명과 함께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만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불행히도 봉천에서 노숙하던 중 마적단의 습격을 받아 친구 11명은 칼에 맞아 죽고, 그만이 붙잡으려는 마적단을 때려눕히고 구사일생으로 그 소굴을 벗어났다.

부득이 만주로 가던 발길을 되돌린 그는 국내로 다시 들어와 스님으로 변복을 한 채 환자를 고쳐 주며 여기저기 떠돌아 다녔다. 그러다 검거하려는 일본 경찰과 맞닥뜨리면 일순간에 때려눕히고 몸을 피신하기를 수차례 하였다.

그 중 한번은 강경에서 총부리를 들이민 일본 경찰들에게 포위당해 꼼짝없이 잡힐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같이 있던 축지와 최면술에 능한 친구가 우두머리 격인 일본 경찰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툭 치자 갑자기 그 일본 경찰이 한 쪽에 있던 바위를 붙잡고 머리를 치면서 엉엉 서글프게 울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소란한 틈을 타 탈출한 적도 있다고 한다.

또 한번은 산을 넘던 중 일본 경찰에게 잡혔다가, 비호처럼 치고 달아났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본 경찰은 너무 심한 타격을 받아 며칠 후 사망했다고 한다. 그 일로 그는 더욱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고 한다.

 

안면도 바닷골에서 난치병 환자 고쳐 주며 생활
이렇게 여기저기 피신하던 그는 광천에서 하룻밤을 묵던 중 배가 아파 죽는다고 데굴데굴 구르는 백낙관이란 사람을 침으로 고쳐 주었다. 백낙관은 태안군 안면도에서 양조장을 경영하던 사람인데, 그가 피해 다니는 사정을 알곤 보답으로 안면도 바닷골이란 곳에 은신처를 마련해 주었다. 바닷골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소나무로 뒤덮인 오지로 일본 경찰의 손이 그다지 미치지 않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수많은 난치병 환자들을 고쳐 주고 재산도 상당히 모았다. 곱사등이 된 사람에게 침을 놓아 허리가 펴지게 했고, 예전에 유독 많았던 채독과 폐병과 소화불량에 걸린 사람을 약으로 고쳐 주었다. 또 중풍마비 환자를 고쳐 주기도 했고, 산후부종으로 실려 온 사람을 고쳐 주기도 했다. 또한 경기 난 아이를 고쳐 주기도 했고, 부인병과 황달과 오줌소태에 걸린 사람을 고쳐 주기도 했다.

참고로 당시 백보현 옹은 침과 약뿐만 아니라 비금생법으로 환자를 고쳐 주기도 했다고 한다. 일례로 당시에는 폐병이 생기면 온 가족에게 전염돼 멸족되기도 할 때였는데, 면서기인 최동진이란 사람이 폐병에 걸려 송장처럼 바짝 마르고 죽음 직전에 있었다고 한다. 그러자 백 옹은 환자를 약과 침으로 치료하는 한편, 비금생법의 강신술을 시범으로 보이며 매일 따라 하도록 시켰다. 최동진 씨는 백 옹이 시키는 대로 강신술을 부단히 연마하여 나중엔 폐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쉬지 않고 3킬로미터를 수영할 정도로 힘이 펄펄 넘치는 강건한 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명의 또는 신침이란 소문나 연일 환자 밀려
이렇듯 많은 환자를 신통하게 고치자 자연히 그는 인근에 명의(名醫) 또는 신침(神鍼)이라고 소문이 났다. 그리고 의문다질(醫門多疾)이라는 말 그대로 그의 집에는 연일 새벽부터 저녁까지 환자들이 줄을 이었다. 말에 의하면 하루 종일 밀려드는 환자들의 약을 짓기에도 눈코 뜰 새 없었다고 한다. 또 멀리서 온 환자들은 그의 집에 며칠씩 묵으면서 병을 고쳐 가기도 했다고 한다.

한편 병자들은 어디에서도 고치지 못하던 병을 낫자 그에게 답례로 땅을 내놓기도 하였고, 배를 기증하기도 하였다. 어떤 이는 은인이라며 해마다 떡을 해 가지고 오기도 하였고, 어떤 목수는 정신병에 걸린 자식을 고쳐 주었다고 좋은 나무로 약장을 짜 주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그는 부자가 여러 해 걸쳐서 모을 재산을 이내 모았다. 많은 재산 중 일부는 광복 후에 후손들이 안면도 간척사업을 한다고 투자했다가 잃어버리기도 했고, 등기가 이전되지 않은 땅은 자손이 찾아오면 되돌려 주기도 하였다. 그는 그렇게 우연히 은신을 위해 들어갔던 그곳에서 수많은 환자들을 고쳐 주며 세상을 떠날 때까지 지냈다.

 

지금도 고남면 명의라면 알아줘
백보현 옹의 이런 구료 일화는 그의 집안사람의 말을 기초로 하여 필자가 안면도 인근 사람들에게 확인한 내용이다. 일례로 안면도 고남면 김우태(취재 당시 49세 남자) 씨는 안면도에 나이 든 사람이라면 지금까지 고남면 명의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이고, 예전에 안면도 사람치고 그에게 치료를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고 백보현 옹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인근 사람들이 집집마다 만장을 써 들고 나와 그를 뒤따르며 애도하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였는데, 그 길이만도 오리 밖에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안면도 솔밭

바닷골





◀사진 위쪽 좌로부터 시계 방향으로 안면도의 울창한 솔밭, 백보현 옹이 일경을 피해 은신해 있으면서 의술을 펼쳤던 바닷골, 광복 후 말년까지 의술을 펼쳤던 고남면의 옛집, 백보현 옹의 의술이 뛰어났다고 들려주는 고남면의 김완준 최창월 씨 부부.

 

 

 

고남면 옛집

고남면 마을사람

 

 

오운육기에 근거한 오상체질론 정립
이 같은 여러 정황을 보아 백보현 옹의 의술이나 무술은 탁월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후손들이 기억하는 백보현 옹은 의술과 무술뿐만 아니라, 경서(經書)의 어느 곳 어느 자 밑에 어떤 자가 있다고 할 정도로 학문에 막힘이 없었고, 천문지리와 시조 문장에도 박식한 대학자였다고 한다.

손자인 백병찬 씨의 설명을 종합해보면 백보현 옹의 의술 중 가장 독특한 것은 오상체질론(五象體質論)이다. 이것은 이제마 선생의 사상체질론과는 달리 사람의 체질을 동양의 전통 철학인 오운육기(五運六氣)에 근거하여 목인(木人)·화인(火人)·토인(土人)·금인(金人)·수인(水人)으로 나눈 것이다.

여기서 목인은 목장부(木臟腑)인 간과 담의 기능이 큰 체질이고, 화인은 화장부(火臟腑)인 심장과 소장의 기능이 큰 체질이다. 토인은 토장부(土臟腑)인 비장과 위장의 기능이 큰 체질이고, 금인은 금장부(金臟腑)인 폐장과 대장의 기능이 큰 체질이다. 그리고 수인은 수장부(水臟腑)인 신장과 방광의 기능이 큰 체질이다.

사람마다의 체질 판단은 사진법(四診法)에 의해서 한다. 대개 맥을 보고, 혈색(얼굴·눈·입술 등의 색)과 신체 형태를 보고, 심신의 상태(소화력·정력·혈압·식은땀과 대소변 등 생리적 특징·수면과 정서적 특징·기호식품 등)를 묻고,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 판단한다. 그리고 사진법과는 달리 사주(四柱)를 보아 환자의 기질적 특성을 파악한다.

이렇게 체질이 판단되면 오행(五行)의 상생상극(相生相剋)의 원리에 따라 부실한 인체 장부와 병의 원인을 판단한다. 그리고 장부의 허실과 병증에 따라 약을 처방하고, 성격의 특성에 맞춰 정신적인 안정을 이루도록 심리 치료를 한다.

백 옹의 후손에 의하면 백 옹은 환자의 맥을 짚은 후 생월생시(生月生時)만으로도 족집게처럼 환자의 생년(生年)과 현재 어디가 아파서 왔는지를 알아맞힐 정도로 체질 판단이 정확했다고 한다. 환자들은 생면부지의 노인이 생월생시만으로 대뜸 자신의 나이와 병증과 몸 상태와 심지어는 자신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를 정확히 말하면 처음엔 깜짝 놀라 기겁을 하다가, 나중엔 의술과 무술과 시문(詩文)과 경서(經書)에 무불통달(無不通達)한 백 옹을 ‘도사’로 존경하며 따랐다고 한다.

 

간 기능이 큰 체질은 활동적이며 대범
▶목인(木人-간): 오상체질론에 따른 체질별 특성을 보면 먼저 간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는,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따라 금장부인 폐가 목장부인 간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폐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반면 간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목극토(木剋土)의 원리에 따라 제일 먼저 비장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그리고 이어서 토극수(土剋水)의 원리에 따라 신장이 상하고, 간과 장부의 한 쌍을 이루는 담이 상하기 쉬운 체질이다. 그 결과 간이 피로하여 중풍에 걸리기 쉽고, 비장이 망가져 당뇨병에 걸리기 쉽고, 신장이 상하여 고혈압에 걸리기 쉽게 된다.

맥은 전체적으로 화인(火人)보다는 약하게 뛰는데, 무게가 있고 저력이 있다. 병이 있을 때는 전체 맥이 감지되지 않을 정도로 뛴다. 그리고 병이 있는 상태로도 병이 없는 사람처럼 활동을 한다. 외형은 몸집이 있는 편이다. 성품은 활동적이고 큰 것을 좋아하며, 큰일을 하다가 죽을지라도 마음에 결정이 되면 밀고 나간다. 남의 말을 쉽게 믿어 잘 속기도 하지만, 일단 당하면 복수를 한다. 대인 관계는 마음이 맞으면 깊이 사귀나, 그렇지 못하면 싫증을 내거나 마음에 두지 않는다. 사업가·자선사업가·발명가·정치인·격투기 운동 선수·괴력을 쓰는 장사가 이 체질에서 가장 많이 나온다.

이런 체질은 앞서 말했듯이 혈액순환계에 질병이 많으므로 피를 맑게 하여야 건강하다. 좋은 약재로는 죽염·황금·대두·황권·자초·위령선·해동피·포공영·호골·백렴·웅담 등이 있다. 반면 돼지고기·오징어·등 푸른 생선은 먹지 말아야 한다.

 

담 기능이 큰 체질은 성품이 온화하고 잔정 깊어
▶목인(木人-담): 담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 역시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따라 금장부인 대장이 목장부인 담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대장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반면 담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목극토(木剋土)의 원리에 따라 위장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그리고 이어서 토극수(土剋水)의 원리에 따라 방광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소장도 상하게 된다. 병은 담즙이 지나치게 분비되어 위궤양에 걸리기 쉽고, 위장과 대장의 기능이 약해 복부에 숙변과 가스가 차 복부 비만이 되기 쉽다. 또한 방광이 상하여 이뇨력이 약하다 보니 몸이 잘 부을 뿐더러 잘 먹더라도 정력이 약한 경향이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위장이 상하여 소화력이 약하다 보니 아주 깡마르기도 한다. 이 밖에 질병으로는 혀에 풍이 와서 말 못하는 병에 걸리기 쉽고, 치매·저혈압·노이로제·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맥은 간이 큰 체질보다 조금 가볍게 뛴다. 외형은 몸집이 있을 수도 있으나 몸집에 비해 힘을 쓰지 못한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주 깡마르기도 한다. 성품은 온화하고 잔정이 있지만, 아주 가까이 또는 아주 깊게 큰 것을 거래하는 것을 꺼린다. 절대 무리를 하지 않는 성격으로 큰 욕심도 없고, 어려움도 싫어하고, 싫은 사람은 꼴도 보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결코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 한번 믿기 시작하면 대책 없이 빨려 넘어가는 약점도 있다. 인내심이 약하여 쉽게 싫증을 내고, 물건을 샀다가 다시 물리는 경우도 많다. 또 고지식하여 상대의 못마땅한 점을 따지고 소리를 지르다가도 금방 후회하는 엄청나게 급한 성격인 반면, 누구에게 당하더라도 복수하려 들지는 않는다. 교육자·학자 등이 이 체질에 적합하다.

이런 체질은 앞서 말했듯이 잘 먹어도 정력이 약하므로 몸을 보하는 약을 위주로 약을 먹어야 건강하다. 용안육·사삼·맥문동·천문동·백합·여정자·황정이 좋고, 나이가 들면 녹용·녹각·산약도 무방하다. 인삼은 과하면 안 된다. 담즙이 많이 분비되므로 시간에 맞추어 식사를 하는 게 건강 유지를 위해 가장 필요하다. 돼지고기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간과 담이 큰 체질은 대인 관계 원만
▶목인(木人-간담): 간과 담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는 질병 면에서는 위에서 설명한 간의 기능이 큰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과 담의 기능이 큰 사람에게 나타나는 질병을 두루 나타내나 비교적 건강하다. 성품은 대인관계가 좋다. 어느 부류의 사람과도 친하게 지내고 적을 만들지 않는 장점이 있다. 단점은 아주 대범하지 못하여 큰일을 직접 도모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산약·녹용·녹각·쇄양·사상자·백편두·속단 등이 있다. 돼지고기와 인삼은 가급적 삼가고, 골고루 먹으면 건강하다.

 

심장 기능이 큰 체질은 남을 돕는 도덕군자형
▶화인(火人-심장): 심장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는,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수장부인 신장이 화장부인 심장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신장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심장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화극금(火剋金)의 원리에 따라 폐가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따라 간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비장도 상하게 된다. 대체적으로 질병이 적고 건강하나, 건강에 비해 정력은 세지 않다. 폐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폐병과 기관지질환에 잘 걸리고, 공기가 나쁜 데 가면 견디지 못한다.

맥은 전체적으로 굳세게 뛰고 외형상으로는 열이 많기 때문에 마른 편이다. 몸은 튼튼하지만 큰 힘은 쓰지 못한다. 반면 몸을 경쾌하게 움직인다. 잘못하면 행동이 경망할 수도 있다. 성품은 예의가 바르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며 약자를 잘 돕고 어질고 착하다. 걱정을 잘하며 남을 먼저 생각하는 도덕군자나 철학자적 기질이 많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심장의 열을 식혀 주고 폐와 간을 보할 수 있는 형개·강활·방풍·박하·우방자·시호 등이다. 반면 산삼은 열이 강한 약재이므로 위험하다.

 

소장 기능이 큰 체질은 학자적 고집 지녀
▶화인(火人-소장): 소장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 역시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수장부인 방광이 화장부인 소장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방광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반면 소장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화극금(火剋金)의 원리에 따라 먼저 대장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그리고 이어서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따라 담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위장도 상하게 된다. 소장에서 수분 흡수가 강하게 이루어지다 보니 변비가 많고 엄청난 비만이 생기기 쉽다. 비대하면서 정력은 약하다.

맥은 전체적으로 목인(木人)과는 달리 뒷심이 약하다. 외형은 몸집이 있는 경우가 많다. 성품은 남에게 욕먹거나 빚지고는 못사는 격이다. 예의가 바르지만 결국 자기 뜻대로 하는 학자적 고집이 세면서도 인내는 약하다. 공무원이나 교육자나 앉아서 하는 장사가 적성에 적합하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방광과 대장의 기능을 강화시켜 주는 죽염·황금·대두·위령선·해동피·상지·어성초·마황·백지·호골·상기생 등이다.

 

비장 기능이 큰 체질은 담백하고 명랑해
▶토인(土人-비장):  비장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는, 목극토(木剋土)의 원리에 따라 목장부인 간이 토장부인 비장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간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비장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토극수(土剋水)의 원리에 따라 먼저 신장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심장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폐도 상하게 된다. 왕성한 소화력을 가지고 있으나 한번 위장병에 걸리면 약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당뇨병에 걸릴 확률은 희박하다.

맥은 전체적으로 가볍게 뛰는 경향이 있다. 외형은 몸이 조열(燥熱)하여 수분이 없기 때문에 상하체가 빈약하여 옷이 흘러내릴 것처럼 보인다. 성품은 단순하고 즐거운 일에 흥미가 있다. 변화를 좋아하고 인내가 약하다. 힘든 것을 견디지 못하고 신실(信實)하고 진지한 것에는 처음부터 마음이 없다. 경망하나 담백하고 명랑하다. 움직임이 많으나, 큰 힘은 없고 정력도 약하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간장과 신장을 보할 수 있는 독활·방기·대극·감수·청상자·호황련·인동·옥발·차전자·활석·지부자 등이다.

 

위장 기능이 큰 체질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 깊어
▶토인(土人-위): 위장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 역시 목극토(木剋土)의 원리에 따라 목장부인 담이 토장부인 위장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담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위장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토극수(土剋水)의 원리에 따라 먼저 방광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소장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대장도 상하게 된다. 무엇이든 잘 먹지만 한번 위장병에 걸리면 약이 없는 만성 위장병에 걸리기 쉬우며, 변비와 전립선염에도 걸리기 쉽다.

맥은 비장이 큰 사람처럼 가벼운 느낌이 있다. 외형은 먹는 것에 비해 살이 찌지 않는 편이다. 성품은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많으면서도 경망하기 쉬우며 약속을 하였다가 생각해본 후 다시 바꾸는 경우가 많다. 잘 먹고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지만, 정력은 약하고 힘든 것을 싫어한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담과 방광을 보할 수 있는 석고·지모·천화분·금은화·연교·어성초·황련·황백·고삼·서각·생지황 등이다.

 

폐 기능이 큰 체질은 국가와 인류애 중시
▶금인(金人-폐): 폐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는, 화극금(火剋金)의 원리에 따라 화장부인 심장이 금장부인 폐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심장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폐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따라 제일 먼저 간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목극토(木剋土)의 원리에 따라 비장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신장도 상하게 된다. 이 체질은 중풍에 잘 걸리지 않지만, 손발에 마비 증세가 올 수 있고 당뇨에 걸릴 수 있다. 또 간이 지쳐 피로가 오기 쉽고, 해독력이 약하기 때문에 독성이 있는 음식이나 약을 먹으면 상당히 괴로워할 수 있다.

맥은 전체적으로 고르게 뛰는 느낌이다. 외모는 마른 편이지만 뚝심이 있고 정력도 강하다. 마른 것에 비해 상체가 발달되어 있다. 성품은 말이 적고 개인적인 삶보다는 국가와 인류와 우주적인 면에 삶의 중점을 두고 사는 특이한 경향이 있다. 연구 발명에 매달리거나, 어떤 일이든 엄청나게 외길로 파고드는 면이 강하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포도근·송절·앵두육·모과·오가피·붕어·겸액·합조개·온미 등이다. 인삼과 녹용은 금물이다.

 

대장 기능이 큰 체질은 예술가적 성향 다분
▶금인(金人-대장): 대장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 역시 화극금(火剋金)의 원리에 따라 화장부인 소장이 금장부인 대장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소장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대장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금극목(金剋木)의 원리에 따라 제일 먼저 담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목극토(木剋土)의 원리에 따라 위장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방광도 상하게 된다. 이 체질은 위장병에 걸리기 쉽고, 피로감 때문에 힘든 일을 오래 못하는 특징을 보인다. 또 소화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음식을 많이 먹으면 속이 거북하고, 신트림이 자주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체질은 소식을 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

맥은 가볍고 건조하면서 뒷무게가 없이 뛴다. 외형은 몸이 조열하기 때문에 상하체가 마른 편이다. 성품은 예술가나 과학자나 연구 발명가의 기질이 다분히 있으며, 불로소득을 얻고자 함에 머리를 지나치게 많이 쓰는 면이 있다.

이런 체질에는 노근·다래·모과·푸른 채소·등 푸른 생선 등이 무조건 보약이다. 반면 각종 약과 술과 고기는 독약이라 할 수 있다.

 

신장 기능 큰 체질은 아름다운 외모와 피부 지녀
▶수인(水人-신장): 신장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는, 토극수(土剋水)의 원리에 따라 토장부인 비장이 수장부인 신장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비장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신장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제일 먼저 심장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화극금(火剋金)의 원리에 따라 폐가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간도 상하게 된다. 이 체질은 심장병에 걸리기 쉽고 위암에 걸릴 확률도 높으나, 전반적으로는 정력이 강하고 장수하는 경우가 많다.

맥은 세지 않으면서도 또박또박 야무지게 뛴다. 외형은 평생 다이어트와 상관없이 몸매가 아름답고 아담하며 피부도 고운 특징이 있다. 따라서 미녀가 많이 나오는 체질이다. 성품은 남에게 빌려준 돈을 달라고 하지 못할 정도의 여린 마음에도 불구하고 악바리 기질이 있어 맡은 일은 야무지게 해 놓는 면이 있다. 한편으론 너무 깊게 생각하다 허무주의에 빠져 자살에 이르는 면도 있다. 대체적으로 생각과 솜씨가 정교하므로 정밀 분야의 엔지니어·시나리오 작가·디자이너·상인·연예인 등이 적성에 어울린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초오·방향·창출·후박·사인·곽향·백두구·초두구·향부자·지실·인삼 등이다. 대신 돼지고기 등 차고 냉한 음식은 금해야 한다.

 

방광 기능이 큰 체질은 무병장수의 체질
▶수인(水人-방광): 방광의 기능이 큰 체질의 경우 역시 토극수(土剋水)의 원리에 따라 토장부인 위장이 수장부인 방광의 힘을 견제하여 신체의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위장의 힘이 약하여 그렇지 못한 경우이다. 그리고 방광의 기능이 강하다 보니 수극화(水剋火)의 원리에 따라 제일 먼저 소장이 망가지기 쉬운 체질이다. 또한 이어서 화극금(火剋金)의 원리에 따라 대장이 상하고, 병이 깊어지면 결국에는 담도 상하게 된다. 이 체질은 이뇨력이 강하여 술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끄떡없는 면이 있다. 또한 건강할 때는 엄청난 바람둥이가 될 수 있다. 질병으로는 동맥경화와 간경화에 걸리기 쉬우므로 조심을 해야 한다. 만약 술과 담배를 금한다면 가장 장수할 수 있는 체질이다. 
 
맥은 전체적으로 고르게 뛴다. 외형은 키가 작아도 몸매 자체가 후리후리하여 날씬하게 보인다. 성품은 외유내강하여 항상 웃는 편한 얼굴이지만 속은 매우 강하다. 워낙 속이 깊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므로 평생을 살아가는 부부도 그 속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격으로 보아 외교관·무역업자·거상·연예인 등의 직업이 어울린다. 또한 이런 성품에 간첩 활동을 하면 제대로 할 수 있다. 그러나 잘못하면 사기꾼이 될 수도 있다. 대체적으로 단체장을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으나, 국가나 기업의 핵심 부서의 장이 된다면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외적으로는 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하는 일마다 평범한 걸 싫어하는 유형으로서, 만일 평범한 일에 노력하면 날로 재산을 더할 수 있다. 달라는 것은 누구에게 무엇이든지 계산 없이 주는 호인이기도 하며 아무런 실속이 없는 일에 인생을 바치기도 한다.

이런 체질에 좋은 약재는 천궁·현호색·단삼·황기·반하·선퇴·전갈·소합향·안식향·백출·음양곽·감초·당귀 등이다.

 

경험방 모아 가전비방집 남겨 <백가가전비방>
한편 백 옹은 증상별로 생전에 즐겨 쓰던 약과 침술 경험방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체질을 오상으로 판단하여 장부의 허실을 조절하는 처방이 병의 근원을 다스리는 이증(裏證)의 처방이라면, 이 증상별 처방은 겉으로 드러난 병을 다스리는 표증(表證)의 처방이다. 백 옹은 수레의 양 바퀴처럼 치료의 균형과 효과를 높이기 위해 이증과 표증의 처방을 고루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약을 지을 때는 한번에 3첩 이상 짓는 법이 없이 약을 복용한 후 다시 오게 해서 몸의 변화  백보현 옹이 경험방을 모아 엮은

를진단한 후 그에 맞게 약을 다시 지었다고 한다.                                                                          <白家家傳秘方>       

또 약의 용량은 음인   (陰人)은 1푼·3푼 등 홀수로, 양인(陽人)은 2푼·4푼 등 짝수로 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체질과 증상에 맞게 약을 먹고 환자는 대개 약 2~3첩에 거의 모든 병을 나았다고 한다. 백 옹이 남긴 경험방 기록을 토대로 증상별 처방을 몇 가지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감기·이질·기력상실에 대한 처방
먼저 약 처방으로서 감기는 기본방으로 감초·방풍·백지·천궁·건갈·생지황·황금·모과·목통·강활·향부자·진피·창출·소엽을 쓴다. 기침을 할 때는 상백피·행인·길경을 가하고, 가래가 끓으면 반하·과루인을 가하고, 땀이 나면 마황을 가한다. 약을 먹고 30분 이상 푹 잠을 자고 나면 몸이 가벼워진다.

소아가 토하거나 설사를 할 때는 화정향·용안육·저령·갈근·백복령·인삼·신곡·산사육·백출·향부자·곽향·감초를 기본방으로 쓴다. 열이 나면 승마·시호를 가한다. 이질은 기본방으로 반하·지실·대황·백작약·황금·시호 등을 쓴다. 장티푸스는 섭씨 40도 정도의 열이 나지만, 위는 냉하여 전혀 음식을 소화시키지 못하는 상태이다. 따라서 탈진하여 위태로울 수 있으므로 인삼을 소량 써서 위를 따뜻하게 보해야 한다. 인삼을 많이 쓰면 열이 더 올라 위험하므로 조심해서 써야 한다. 영양이 실조되었다 하여 소장이 좋은 사람에게 포도당을 주사하면 위험하다.

이 밖에 기력이 약할 때는 우슬·산조인·사상자·음양곽·토사자·산약·육종용·감초를 기본방으로 몸 상태에 따라 약재를 가한다. 예를 들어 간장이 약할 때는 천마·천궁·황련을 가하고, 담이 약할 때는 지유·산조인·세신을 가하고, 심장이 약할 때는 인삼·복신·창포를 가한다. 정신이 약할 때는 주사·예지·복신을 가하고, 비장이 약할 때는 백출·백작약·익지인을 가하고, 위장이 약할 때는 황련·지실·계금백을 가한다. 신장이 약할 때는 숙지황·원지·목단피를 가하고, 소변을 보기 힘들면 황금·택사·황백·지모·복령·지실·두충을 가하고, 소변이 노란색일 때는 황백·택사를 가한다. 그리고 소변이 붉으면 황금을 가하고, 소변이 뚝뚝 떨어지면 황백·두충을 가하고, 소변이 탁하면 후박을 가한다. 또 꿈이 많을 때는 용골을 가하고, 갈증이 나면 맥문동·지모를 가하고, 허리를 쓰지 못하면 자석·두충을 가한다. 또 담으로 결릴 때는 생강·반하·지실을 가하고, 건망증이 있을 때는 복신·원지를 가한다.

 

감기·비만·변비·피곤증·경기에 대한 침술 처방
침술 처방으로는 먼저 감기에 걸렸거나 잘 걸리는 때는 경거·곡택·태연·어제·상양 등의 혈에 침을 하고, 마음이 급해지거나 화가 날 때는 곡천·간사·노궁·중충 등의 혈에 침을 한다. 잘 놀라거나 두려울 때는 소해·영도·신문·소부·소충 등의 혈에 침을 하고, 자주 피곤하거나 안정이 되지 않을 때는 천정·지구·중저·관충 등의 혈에 침을 한다.

비만해질 때는 소해·양곡·후계·전곡·소충 등의 혈에 침을 하는데, 침을 놓은 후 사법(瀉法)으로 시계 반대 방향으로 두 바퀴 돌린다. 그리고 30분 뒤에 침을 뽑는다. 반면 너무 깡마를 때는 소해·양곡·후계·전곡·소충 등의 혈에 침을 하는데, 침을 놓은 후 보법(補法)으로 시계 방향으로 두 바퀴 돌린다. 그리고 30분 뒤에 침을 뽑는다.

변비가 있을 때는 곡지·양계·삼간·이간·상양 등의 혈에 침을 하고, 정력이 시원치 않을 때는 음곡·복류·태계·연곡·용천 등의 혈에 침을 한다. 속이 더부룩할 때는 음릉천·상구·태백·대돈·은백 등의 혈에 침을 하고, 자주 피곤하거나 피로할 때는 곡천·중봉·태충·행간·대돈 등의 혈에 침을 한다.

소변이 시원치 않을 때는 위중·곤륜·속골·통곡·지음 등의 혈에 침을 하고, 신트림이 날 때는 양릉천·양보·족임읍·협계·족규음 등의 혈에 침을 한다. 또 소화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족삼리·해계·합곡·내정·태충·여태 등의 혈에 침을 하고, 소아가 경기를 하거나 실신을 했을 때는 백회·신정·소요·인중·승장·풍부·풍지·용천·대돈·은백 등의 혈을 번갈아 가며 소생이 될 때까지 계속해서 침을 한다.

그리고 압통점에 직접 침을 하는 것도 치료 효과가 높은데, 간이 닿는 부분을 제외하고는 손으로 눌러 가장 아픈 지점에 침을 하면 효과가 있다. 또한 치료에 해당하는 혈에 침을 하기에 앞서 백회·대추·용천 혈에 침을 하면 기가 트여 치료 효과가 높다. 이 밖에 간이 있는 부분이나 두뇌 부분은 1센티미터 이내로 침을 하면 의료 사고를 막을 수 있다.

 

후손들을 통해 명의로서의 성가 이어져
백 옹이 펼쳤던 이러한 의술은 백 옹이 타계한 후에도 그의 집안에서 대대로 이어졌다. 이유인 즉 백 옹의 생전에 밀려드는 환자들에게 약을 짓고 침을 놓느라고 모든 식구들이 매달리고, 오랫동안 백 옹의 의술을 옆에서 보고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백 옹의 부인·아들·며느리·손자 할 것 없이 모두가 반 의사가 다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인근의 사람들 또한 병이 낫다 하면 백 옹이 살아 있을 때처럼 백 옹의 집에 찾아와 치료를 요구하는 바람에 약을 짓고 침을 놓는 걸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한다. 병이 나 찾아온 사람들은 백 옹이 살았을 때도 모든 식구들이 약을 짓고 침을 놓았는데, 백 옹이 없다고 해서 못할 이유가 없다는 식이었다. 결국 백 옹의 의술은 백 옹이 타계한 후에는 백 옹의 부인을 중심으로 아들·며느리·손자가 보조하여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어졌고, 백 옹의 부인이 타계한 후에는 아들과 며느리를 중심으로 손자가 보조하여 환자를 치료하면서 이어졌다.

당시의 일에 대해 안면도 고남면 채규만(취재 당시 50세 남자) 씨는 안면도에서는 백 옹이 타계한 후에도 여전히 백 옹의 집은 ‘백 의원’으로 통하였고, 병이 나면 ‘백 의원’으로 갔다고 한다. 그리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한약방으로서 ‘백 의원’을 기억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 문화와 의술에 대한 보존 대책 시급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선대가 타계하고, 무면허 의료 행위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자 의료 면허가 없던 백 옹의 후손들은 생업을 찾아 외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 바람에 지금은 안면도에 ‘백 의원’은 사라지고 없다. 그리고 이제 백 옹의 후손들은 명의로서 성가를 높였던 집안의 내력과 백 옹의 뛰어났던 의술을 가슴에 묻어 두고 살고 있다. 다만 집안의 어른이 타계하여 고향의 장지에 가는 일이 있으면 어디에서 소문을 듣고 왔는지 아직도 환자들이 몰려와 자리를 깔아 놓고 치료를 해 달라는 일이 있다고 한다. 그 진풍경 속에서나마 예전에 화려했던 명성의 일단을 엿볼 수 있다고 한다.

현재 백보현 옹이 행했던 선비무술인 비금생법과, 독특한 의술은 그의 손자 백병찬 씨에게 전수되어 있다. 백병찬 씨는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에 전통 문화가 말살되고, 광복 후에도 의료법이란 족쇄에 묶여 여러 가문에서 내려오던 독특한 의술들이 하나둘씩 사라진 게 커다란 불행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 민족의 보물과도 같은 비금생법과, 조부의 오상체질의학을 이대로 사라지게 할 수 없다는 신념으로 현재 이에 대한 보존 대책을 관계 요로에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전통 선비무술인 비금생법 명맥 이어
백병찬 씨가 비금생법을 접하게 된 때는 9살 때이다. 그는 조부가 가르쳐 주는 대로 행하기도 하고, 조부가 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비금생법을 익혀 나갔다. 때로는 주먹을 단련시키기 위하여 산 속에 들어가 나무를 수없이 쳤고, 비금생법의 날렵한 발걸음을 익히기 위하여 바닷가에 놓인 미끄러운 돌을 징검다리 삼아 수없이 뛰어다녔다. 또 몸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한겨울에 냉수욕을 하기도 하였고, 한겨울에 냉방에서 자면서 기(氣)로써 땀을 내기도 하였다. 또 전신의 기를 폭발시켜 육중한 쇠방망이를 양손으로 잡아 부러뜨리기도 하였고, 생나무를 주먹으로 쳐서 부러뜨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가부좌와 기립 자세에서 기를 모으는 연습과, 호흡법을 통해 기를 전신에 순행시키는 훈련을 하면서 몸을 강철처럼 만들어 나갔다.

그의 조부는 비금생법의 강신술이 완성되면 전신에 전기가 오듯이 찌릿찌릿한 현상이 온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는데, 그는 실제로 무수히 비금생법을 수련하던 27세 때에 전신에 기가 통하는 현상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한편으론 기훈련이 과도한 나머지 잠을 잘 때마다 가슴에 기가 꽉 뭉쳐 숨을 들이쉬지도 내쉬지도 못하는 고통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동안 매일 밤마다 고통을 당하던 그는 1990년 무렵 중국에 의학 공부를 하러 갔다가 그곳의 조선족 의사 말을 듣고 기가 뭉치는 현상을 고쳤다고 한다. 그 의사는 수련하느라고 기를 너무 당겨 써 심장의 기운이 커졌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니 좋은 약술을 먹고 자라고 했다. 그 말대로 하고 기가 뭉치는 증상을 고쳤다.

백병찬 씨에 따르면 1990년 중국에 의학 공부를 하러 갔을 당시 그는 중국 내에도 비금생법과 같은 무술이 있는지 여러 무술 고수들을 통해 자문도 구하고 조사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중국 내에서 비금생법과 같은 무술은 발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특히 소림사 무술 고수들과 대련한 후 그들은 대련조차 성립되지 않을 정도의 비금생법의 엄청난 파괴력과 비호같은 몸놀림에 놀라며 중국 내에 없는 처음 접한 무술이라며 비금생법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비금생법이 단순한 무술이 아닌 예전에 무인들이 무술을 연마하기 위한 방법으로 익혔던 실전적 무술이자 우리 민족 고유의 선비무술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나라 안에서 비금생법의 맥을 잇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우리의 소중한 전통 선비무술인 비금생법의 맥을 잇고 있는 문화 계승자라 할 수 있다. 더구나 조선 정조대왕 시대의 국왕 호위 장수이자 정조의 특명으르 당대의 학자인 박제가 이덕무와 함께 <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를 저술하여 전통 무예의 맥을 되살린 백동수(白東脩, 1743∼1816)가 그의 8대조 종친이라는 점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이어 오면서 그의 집안에 유달리 무인이 많았던 점은 전통 선비무술인 비금생법의 맥이 그의 집안과 그에게 이어지게 했던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9살 때부터 조부에게 침술 배워
한편 그가 조부의 의술을 익히기 시작한 것도 9살 때부터이다. 그의 조부는 그를 옆에 앉혀 놓고 약방문을 불러 주며 첩약을 짓게 하기도 하고, 침을 놓게 하기도 하였다. 당시 어린아이에게 침을 놓게 하는 것에 의아해서 환자들이 물으면 “아이의 정기는 어른과는 비교할 수 없이 맑아 더 큰 효험이 있다오”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의 조부는 의로침소(醫老鍼少)라 하여 의사는 늙으면 좋은 경험방을 내놓을 수는 있으나, 침을 꽂을 때는 젊은 사람의 기운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였다. 그는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으로 의술을 익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선친(白承載 2000년 77세 일기로 작고)에게 맥진법과 오상체질의학을 배우는 한편, 조부가 남긴 경험방을 보면서 의술을 터득하였다.

그는 한동안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생업을 하였지만,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인 의료 본능 때문에 아픈 사람만 보면 나서서 고쳐 주어야겠다는 마음을 누를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그는 조부의 뒤를 이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의료 자격증을 얻기 위하여 1990년 무렵 중국에 건너가 중의학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중의사 의료 자격증을 취득한 후 집안에서 내려오던 의술을 바탕으로 하여 아픈 사람에게 침술을 베풀기 시작하였다.

 

중풍·신경통·성기능 장애 등 환자 침술로 고쳐 줘
처음에 그는 선교회 활동을 하면서 많은 교인들에게 침을 놓아 주었다. 한번은 5년 전에 강원도 홍천의 시골 교회에 선교 활동차 갔다가 중풍에 걸린 81세 된 노인에게 침을 놓아 그 자리에서 걸어 나가게 하기도 하였다. 당시 노인은 팔을 올려 붙이고 발걸음을 게걸음 걷듯이 옆으로 겨우 움직일 정도로 마비 증상이 심하였다. 맥을 보니 간이 큰 체질로서 장사의 기력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현재 중풍에 걸렸을 뿐이지 침을 놓으면 그 자리에서 호전되리라 생각하고 침을 20대가량 놓았는데, 바로 팔이 펴지고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다. 노인은 자신의 마비가 풀린 것이 너무 기뻐 그 자리에서 겅중겅중 뛰어다녔다고 한다.

또 한번은 그의 사무실로 중풍에 걸린 아버지를 아들이 업고 무작정 들이닥친 일이 있다. 처음에 환자는 번듯한 병원에서도 못 고친 병을 의원도 아닌 사람이 어떻게 고치냐 싶어 침을 맞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그의 침을 맞고 중풍이 나았다는 아들의 설득으로 속는 셈 치고 침을 맞기 시작하였다. 환자는 간과 담이 큰 체질이었는데, 두 번째 와서 침을 맞고 바로 일어서서 걸어 나갔다. 환자는 오랫동안 고생했던 병이 이내 낫자 처음에 의심했던 태도와는 달리 백배 고마움을 표시하고 갔다고 한다. 백병찬 씨
                                                                                            
백병찬 씨▶
이 밖에 그는 다방에서 두통·견비통·피곤증 등이 있는 주변 사람들을 즉석에서 침을 놓아 고쳐 주기도 하였고, 전에 그의 침을 맞고 병이 나은 사람의 소개로 찾아온 신경통 환자를 고쳐 주기도 하였다. 또 병원에 가도 병명을 모를 정도로 온 몸이 아파 신음하는 사람을 고쳐 주기도 하였고, 두통과 전신 무기력증으로 거동조차 제대로 못하는 사람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또 지나친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 체중보다 30킬로그램 더 나가는 비만증 여자를 간의 힘을 조절해 주는 체질침을 놓아 정상 체중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정상 체중보다 20킬로그램 덜 나가 살이 찌는 게 소원인 남자를 담의 힘을 조절해 주는 체질침을 놓아 정상 체중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였다. 그리고 시력이 약화되어 안경을 쓴 사람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기도 하였고, 성기능 장애·생리불순·생리통·폐경에 시달리는 사람을 고쳐 주기도 하였다.

이상의 구료담은 백병찬 씨의 구술을 정리한 것으로서 어느 정도가 사실인지 일일이 확인할 길은 없다. 그것은 그가 우연히 만난 사람이나 알음알음으로 찾아온 사람에게 그저 침술로 고쳐 주면 그만일 뿐 기록에는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는 필자가 확인 취재하여 그의 의술의 일단면은 확인할 수 있었다.

 

전북 군산시에 사는 임동신(취재 당시 46세 여자) 씨.
그는 2001년 2월에 치질암·간암·식도암·적혈구 부족 등의 병으로 사경을 헤매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당시 자신의 몸은 ‘종합병동’이었다고 한다. 항문에서는 앉으나 누우나 피가 줄줄 흐르고 배는 복수가 차 올랐다. 또 식도암으로 음식은 물론 물 한 모금조차 제대로 넘길 수 없는 처지라 기력이 쇠진하였다. 그간 입원했던 군산의 모 양방병원에서 더 이상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집에 실려 왔다. 가족들은 비록 절망적인 상태지만 끝까지 치료는 해야 한다며 서울의 모 양방병원에 입원 예약을 한 후 봉고차에 그를 싣고 서울 한남동까지 왔다.

그때 아는 사람의 소개로 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에 백병찬 씨를 만났다. 백병찬 씨는 일단 응급 처치로 그에게 지혈이 되도록 침을 놓고 약을 주었다. 그리곤 다음날 아침까지 항문에서 피가 터지지 않으면 자신의 치료로 가능성이 있으니 양방병원에 입원하지 말고 군산 집으로 내려가라고 하였다. 처음엔 그나 가족이나 치료 효과가 있으리라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더구나 당시 그는 이미 동공이 풀리고 인사불성의 혼수상태이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그간 양방병원에서 별 짓을 다해도 멈추지 않던 피가 더 이상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제야 백병찬 씨의 치료가 효과가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고, 양방병원에 입원해 보았자 별 방법이 없는 형편이기도 하여 집으로 다시 내려갔다.

그 뒤 그는 백병찬 씨에게 1개월에 걸쳐 침을 맞았다. 그 사이 몸 상태는 복수도 빠지고, 식사도 정상적으로 할 만큼 호전되었다. 백병찬 씨는 맥을 보더니 생명맥이 돌아왔다며 이제 더 이상 예전의 병으로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하였다. 전에 치료했던 양방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도 암이 거의 없어졌다고 하였다. 또한 한 때 수혈을 해도 적혈구 수가 정상인의 1/3이었던 게 거의 정상으로 회복되었다고 하였다. 현재 그는 간간이 약을 먹고 있을 뿐, 완전히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인천에 사는 서숙자(취재 당시 60세 여자) 씨.
그는 3년 전 심한 목 디스크로 고생을 하였다. 또한 날이 흐리면 허리·어깨 할 것 없이 통증이 심해 꼼짝 못하였다. 여러 한방병원과 양방병원에 다녔지만 차도가 없었다. 그러다 백병찬 씨에게 침을 세 차례 맞았는데, 그렇게 심하던 통증이 현재까지 재발되는 일 없이 말끔히 사라졌다고 한다.

또한 그의 오빠(취재 당시 72세)는 5년 전에 간암 말기로 양방병원에서 3개월 정도밖에 못 살 거라는 말을 듣고 퇴원하였다. 그때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백병찬 씨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네 번에 걸쳐 침을 맞았는데, 첫 번째 침을 맞고 기력을 상당히 회복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맞고는 손이 떨리던 게 사라졌고, 세 번째 맞고는 눈앞에 주먹만 한 것이 왔다 갔다 하는 듯한 환시(幻視)가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맞고는 검붉었던 혈색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의 오빠는 3개월밖에 못 살 거라는 양방병원의 말과는 달리 5년이 지난 현재(취재 당시인 2002년 1월)까지도 생존해 있다.

1.백보현 옹의 손자 백병찬 씨로부터 백보현 옹의 의술을 취재한 때가 2002년 1월 입니다. 그리고 <주간 현대신문> 2002년 2월 24일자에 <향토명의열전> 제하의 기획 연재기사 중 37번째로 발굴한 명의로 글을 실었습니다.

2.
기사가 나간 후 전통 무술인 비금생법에 대해 관심이 있는 분들로부터 많은 문의가 있었습니다. 백병찬 씨의 연락처는 010-9988-6193과 0130-270-6193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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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현 옹이 남긴 경험비방서인 <백가가전비방(白家家傳秘方>을 구입하시려는 분의 문의가 많습니다. <백가가전비방>을 구입하고자 하시는 분은 저희 연구소로 전화(02-888-7780) 주시기 바랍니다

 
출처//몸에좋은 산야초 ㅣ 글//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