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udt 의 아픔들..........

2015. 2. 21. 20:50진실

옛날  해군엔
특수 훈련을 받는 UDT가 있었고 이 훈련자들이 북쪽으로 무장간첩으로 북파 될때
UDT요원들을 후송하는 부대가 있었다.

언제 어디로 침투시킬지 머리를 굴리는 해군 첩보부대 일명 NIU....해군 첩보부대이다.
이들은 행정, 군수, 호송의 업무를 보고
특수훈련을 마친 UDT요원들을 최종 침투지역까지 호송한다.
그리고 UDT들이 북쪽으로 넘어 간다.

정작 북쪽으로 들어가는 자들은 UDT이다.

그런데 이들 UDT가 북파될때는  그들의 신분과 소속은 NIU로 전속되면서
이름이 UDU로 바뀐다.
NIU속의 UDT들은 본대에 남아 있는 UDT와 구분되게 UDU의 이름으로
NIU속에서 근무하였고..
UDU 인원을 항상 20명을 유지 시켰다.
작전으로 인원이 모자라면 UDT 본대에서 다시 데려 간다
그렇게  보충하는 방식으로 북파간첩을 보내던 1955년 부터 1971년까지
16년동안 그 형태를 지속시킨 것이다.

16년 동안
2,000여명이 훈련을 받았고 그 중 훈련을 이겨내고
UDT 요원이 된 사람은 총  404명이다.(국방부 공식자료)
이중 북파공작에 투입된 요원은 국방부 공식자료:107명이다.
나머지 297여명중  HID,OSI,MIU 로 들어간 인원이 40여명이다.
이것은 현재까지 집계된 숫자이며 정확한 인원은 국방부의 침묵속에 베일에 가려져 있다.

 위의 자료는 UDT 훈련이 북파공작 훈련임을 보여주는 실증적 사료인 것이다.

그래서 UDT 훈련을 북파공작을 위한 훈련이었음을
인정하라는 것이 UDT의 요구인 것이다.

어느 부대가 16년 동안
2,000여명이 차출되어 훈련을 받았으나 훈련에서 살아남은
인원이 UDT가 되었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졌다.
정예요원 404명 중 150여명이 북파공작에 투입되었다면
그 훈련을 평범한 훈련이라 할 수 있는가?


UDT는 미 해군에서 만들어 졌고
한국 UDT는 미국이 만들었다.

미 UDT속에  UDT, SEAL, EOD, UDU 단위 부대로 편성되어 있다.

한국  UDT는 그 속의 UDU를 NIU에 보내어 활동을 시켰는데..
이를 전출로 보느냐, 전속으로 보느냐, 파견으로 보느냐에 따라
북파공작\의 대상으로 판가름 한다.

잘못된 잣대에 의해 실제 UDT들은 모두 배제시켰다.

사실상 1971년 북파공작원들은
UDT였고 그때는 UDT가 UDU였고 UDU가 UDT 였다.

현재 UDT에서 UDT 와  EOD,  SEAL TEAM을 구분하지 않는 것처럼..


진짜 고생(훈련)은 UDT가 하고 보상은 UDT를 북파시키기 위해 작전을 짜고 호송한 NIU들이 다 받는다.

UDT는  몸으로 때웠고..
NIU는 UDT를 어디로 보낼지...인사업무를 봤으니
30년이 지난 지금
아무것도 모르는  UDT 요원들은 지금도 소외된 것이다..

특수임무수행자 법은
후송요원들까지 보상하면서 UDT는 제외 되었다.

UDT들은 왜 그런 훈련을 받았는지도 모르고.
심지어 우리가 보상을 받아야 되는게 맞느냐고 도리어 반문을 한다.

모든 것은 훈련을 받은 UDT요원조차 비밀속에
가려져 있어서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왜 그런 훈련을 받았으며, 훈련후 왜 아무런 일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는지도
알지 못한체...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실제 우리는 UDU와의 싸움이 아니라
UDT의 또다른 이름인 UDU들이 소속되어 있었던
NIU 행정요원들과 싸우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해군의 NIU, 육군의 AIU가 통합되어
정보사라는 이름으로..
훈련도 UDT처럼 받고 있지만

아주 옛날엔 그들 NIU는 행정, 인사, 군수, 호송을 맏았던 행정요원일 뿐이었다.
북파를 한 자는 UDT였다.

출처 : 산에있는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
글쓴이 : 해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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