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美 비밀문서 “전두환, 광주 시민 베트콩 취급하며 잔혹 진압”

2017. 8. 21. 21:29진실


              미국 국방정보국이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1980년 6월 11일 본국으로 타전한

              2급 비밀문서 일부를 CBS노컷뉴스가 입수해 21일 공개했다. 

            

      시민 구타하는 5·18 계엄군 5·18기념재단은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광주 서구 쌍촌동 5·18 기념문화관에서 ’5·18, 위대한 유산/연대’ 전시를 연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 기자의 실존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항쟁을 기록한 영상과 갈무리한 사진,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과 이창성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목숨 걸고 기록한 보도사진 등 200여점이 선보인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소개될 5·18당시 힌츠페터의 기록물.  5·18기념재단 제공

      ▲ 시민 구타하는 5·18 계엄군
      5·18기념재단은 오는 23일부터 다음 달 14일까지 광주 서구 쌍촌동 5·18 기념문화관에서 ’5·18, 위대한 유산/연대’ 전시를 연다. 영화 ’택시운전사’ 속 독일 기자의 실존인물인 위르겐 힌츠페터가 1980년 5월 항쟁을 기록한 영상과 갈무리한 사진, 나경택 전 연합뉴스 광주전남취재본부장과 이창성 전 중앙일보 사진기자가 목숨 걸고 기록한 보도사진 등 200여점이 선보인다. 사진은 이번 전시에 소개될 5·18당시 힌츠페터의 기록물. 5·18기념재단 제공

       

      미 정보국은 이 보고서에 신군부 수뇌부들(전두환, 노태우, 정호용)이 베트남전에서 경험을 쌓았고, 그곳에서 공산당으로 보이는 베트콩(베트남인)을 죽인 것처럼 광주 시민을 국민이 아닌, 베트콩처럼 취급하며 잔혹하게 진압했다고 적었다. 한 정보원의 말을 인용해 베트남에서 미군이 양민을 학살한 마을인 ‘미라이(MY LAI)’에 빗대 광주를 ‘한국의 미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로 당시 총리는 광주 시민들에게 담화를 통해 “한국민의 품으로 돌아오라”고 했다. 정보원은 “이 담화는 당시 전라남도를 별개의 집단으로 간주하던 계엄사령부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군 내부정보원들조차 “광주 폭동에 대한 한국군의 동떨어지고 잔인한 처리”라며 “잘못된 과잉대응”이라고 말했다. 탐사보도기자 팀 셔록은 노컷뉴스에 “한국군 내에도 광주 진압작전의 내용을 잘 알고 전두환의 처사에 반감을 갖고 있는 세력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토대로 미 정보국은 “전라남도 대중들이 길거리로 나온 것은 군대의 초기 진압이 잔인했기 때문”이라고 본국에 타전했다. 군인들은 초기 학생들과 시민들을 뒤쫓아가 대검으로 찌르고, 총을 쏘고, 불을 질렀다. 한 식당 주인은 학생들을 숨겨주다가 총에 맞았고 식당은 불에 탔다. 이에 반발한 광주 시민들이 집에서 나와 거리로 나온 것이다. 

      올해 첫 천만영화가 된 영화 ‘택시운전사’는 1980년 5월 광주를 다뤘다. 광주 시민들은 과도하고 잔혹한 진압에 대해 “군인들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계속 묻는다. ‘한국인에게 공개 금지(NOT RELEASEBLE TO KOREAN NATIONAL)’라고 적힌 이 보고서는 그 이유를 알고 있었던 셈이다. 이 문서는 미 합동참모본부와 태평양사령관 등 미 군 당국과 국무부 장관과 CIA에게 전달됐다. 

      김유민 기자 planet@seoul.co.kr 

      [출처: 서울신문에서 제공하는 기사입니다.]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821500017&wlog_tag3=daum#csidxbb9eaaa6441ab4c981c1032978320a1

       

      ≪=====================≫


      JTBC  당시 광주에 있던 피터슨 목사 '친필 수기' 입수



      [앵커]

      이처럼 5·18 당시 조종사들은 사실상의 공습 대기로 해석되는, 출격 대기 명령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관련 정황은 더 있습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현지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아놀드 피터슨 목사의 친필 수기를 입수해서 살펴봤는데, 피터슨 목사는 당시 광주에서 미국인 대피를 담당했던 미군으로부터 공습 계획을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서 박병현 기자입니다.

       

      [기자]

      아놀드 피터슨 목사가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겪고 난 후 쓴 수기입니다. 당시 광주에 머물며 선교활동을 하던 피터슨 목사는 광주에서 대피하라는 미군의 제안도 거절하고, 민주화 운동 기간 내내 광주에 남아있던 인물입니다.

      수기에서 주목할 부분입니다. 피터슨 목사는 그 당시 미군 하사로부터 "한국 공군이 도시에 폭탄을 떨어뜨릴 계획을 세웠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5·18 진실규명지원단 안길정 연구원은 이 정보가 신빙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안길정/5·18 진실규명지원단 연구원 : (데이브 하사는) 미국인의 피신을 책임지는 책임자였기 때문에 그 정보는 믿을만한 것이었습니다.]

      또 북한의 도발에 대비한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도 사실과는 다른걸로 보입니다. 올해 초 공개된 CIA자료에 따르면 "5·18 전후로 북한군의 동향에 특이점이 없다"고 돼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JTBC는 국방부에 전투기 출격 명령 내역 등 관련 정보 공개를 요청했지만 국방부는 관련 자료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앵커]

       

      잠시후 2부에서는 지금까지 보도해드린 내용을 증언해 줄 당시 전투기 조종사 한 분을 연결해서 직접 인터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