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군은 38선을 넘지 않는다"

2017. 12. 17. 17:14시사

[취재파일] "미군은 38선을 넘지 않는다"

    입력 2017.12.16. 14:39 수정 2017.12.16. 15:17


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워싱턴에서 밝힌 ‘북한 급변사태에 대한 대응방안’은 미국과 중국간에 김정은 정권 이후의 상황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으로 논의가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당장 김정은 정권 붕괴를 상정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모르므로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자는 차원과 함께, 미국 입장에서는 중국에 “김정은 정권이 붕괴하더라도 중국이 우려하는 상황이 벌어지지는 않을테니 김정은 정권 압박에 더욱 힘을 써달라”는 의미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틸러슨은 “미국이 핵무기 확보를 위해 38선을 넘어가더라도 반드시 남쪽으로 복귀할 것임을 중국측에 약속했다”고 밝혔다. 미군이 북한으로 진주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중국군과 미군이 국경을 맞대는, 중국이 우려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이다.


틸러슨이 밝힌 미국의 이런 구상은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밝힌 ‘미·중 빅딜론’의 연장선에 있다. 키신저는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과 중국이 사전에 합의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질 것이라는 중국의 우려를 덜어주기 위해 한반도로부터 대부분의 주한미군 철수 같은 것이 (합의사항에) 포함될 수 있다”고 밝힌 것으로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난 7월 전했다. 뉴욕타임스는 키신저가 이같은 제안을 틸러슨 국무장관을 비롯한 다른 관리들에게 조언했다고 전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지난 10월 백악관에서 키신저 전 장관을 직접 만나기도 했는데, ‘미·중 빅딜론’에 대한 논의도 보다 비중있게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


키신저-트럼프



● 키신저와 틸러슨의 차이


그런데, 이번에 틸러슨이 밝힌 ‘북한 급변사태 대응방안’은 키신저가 밝힌 ‘미·중 빅딜론’과 다소 차이가 있다. 김정은 정권 붕괴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덜어줘야 한다는 점은 같지만, 그 방안으로 키신저는 ‘대부분의 주한미군 철수’를 거론한 반면, 틸러슨은 ‘미군이 38선 이북에 주둔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빅딜론이 약간 수정된 것이다.


빅딜론이 수정된 이유를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더라도 미국이 동북아에서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는 한국에 미군이 주둔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김정은 정권 붕괴의 대가로 주한미군을 대부분 철수시키는 것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상당한 손해로 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은 주한미군 철수 대신 미군을 지금의 휴전선 이북에 주둔시키지 않음으로서 북한 지역을 여전히 미군과 중국군의 완충지대로 남겨두는 방안을 구상한 것 같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 장기적으로 보더라도 주한미군의 철수는 바람직하지 않다. 김정은 정권이 무너지고 북한 상황과 동북아 정세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주한미군이 일정 정도 존재하는 것이 동북아 정세 안정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금보다 주한미군이 감축될 수는 있겠지만 일정 규모 이상이 주둔하면서 안보와 역사 문제 등으로 복잡한 동북아 구도에서 균형자적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중국의 우려를 덜기 위해 미군이 38선 이북에 주둔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적인 선택일 수 있다.


틸러슨



● ‘미·중 빅딜론’의 숨겨진 내용은?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부분은 ‘미·중 빅딜론’의 드러난 부분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은 부분이다. 키신저와 틸러슨의 언급을 비교해보면 ‘미·중 빅딜론’은 갈수록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틸러슨이 공개한 부분이 ‘빅딜론’의 전부이겠냐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 김정은 정권 이후의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면, 미군의 활동범위에 대한 논의 뿐 아니라 김정은 정권이 무너진 뒤 과도기적인 북한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을 것이다. 아직 두 나라가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더라도 이 부분에 대한 논의가 지금 진행중일 수도 있다.


이 경우 미·중이 우리 국익에 맞는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에 합의할까?


미국과 중국의 국익은 한반도 통일에 있지 않다. 그저 위험한 김정은 정권이 정리되고 핵문제가 해결되면 한반도가 분단상태이든 통일이든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미·중이 합의할 수 있는 김정은 정권 이후의 북한은 미·중의 공동 신탁통치 기간을 거친 뒤 세워지는 온건한 친중 정권 정도일 수도 있다.


● 정부, ‘한반도 미래’ 논의하는 미중간 논의에도 적극 개입해야

 

미·중이 한반도의 미래에 대해 내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 확인된 이상 우리 정부도 이에 적극 개입해 들어가야 한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김정은 정권과 대화하고 김정은 정권을 상대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주변국들의 비상계획에도 우리가 발을 걸쳐놓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주변국들이 우리의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의 운명을 재단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북한의 핵, 미사일 개발로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지금, 한반도는 위기가 점증할 뿐 아니라 유동성 또한 커지는 상황에 있다. 앞으로의 상황이 언제 어떻게 전개될지는 누구도 확실히 장담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일수록 정부는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