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거리 사진가가 있었다

2014. 9. 10. 23:44시사

세월호 참사 현장·강정·4대강 등 곳곳에서 사건과 현상의

실체를 끝까지 드러내려 렌즈를 대는 다큐멘터리 사진가들

한겨레21 | 입력 2014.09.05 15:00

 
다큐멘터리 사진을 이해하는 데 다음의 문장보다 더 유명한 구절이 있을까? "내가 그 이야기를 몇 마디 말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카메라를 애써 가지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루이스 하인)

지난 30여 년 동안 한국의 사회적 다큐멘터리(Social Documentary) 사진의 노정은 루이스 하인의 말처럼, 언어의 상징적 영역을 벗어나 한국 사회의 실재들을 겨냥해왔다. 사진을 보여주는 방식도 신문에서 잡지, 사진집 출판과 전시,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그 파급력과 속도의 측면에서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밀레니엄 이후에는 사진가들이 주축이 된 기획과 공동작업이 활성화되면서 저널리즘을 포함한 다큐멘터리 사진 전반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게 된다. '아직도 리얼리즘 사진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은 해체되기 시작했고, 주요 미술관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에 대한 해석이 다층적으로 이루어졌다.

연대하는 사진가들의 놀라운 행보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동적으로 반영하므로 예술작품 범주에 포함될 수 없다는 한계가 무너진 자리에 실천적·이론적 무장을 한 사진가 주체의 감각과 사유를 매개로 능동적 활동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현실을 수동적으로 반영한 사진은 다큐멘터리 사진이 아니다. 관념론적 인식론의 '거울환상'은 이미 깨졌다. 사진가들이 주체적으로 현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이끌어내면서 사진이 현실의 모방이냐 창조냐 하는 낡은 논쟁은 무색해졌다. 그 마중물의 역할로 사진가 노순택의 은유와 상징은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좌표를 설정하게 된다. 사진 재현의 한계를 통해, 시대의 위기를 줄기차게 드러내온 그의 사진 속으로 부박(浮薄)했던 우리의 지난 역사가 도피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미지'로 은폐됐던 정치 이데올로기를 흠집 내고 재구성해낸 노순택의 사진 도정이 '국립현대미술관'에 펼쳐져 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이미 조작된 가상의 현실을, 사진 이미지를 통해 바라보게 되는 겹겹의 가상 속에 살게 되면서 보고 싶은 이미지만 보고, 알고 있는 만큼만 이해하는 '이미지 맹목'을 자주 목도하게 된다. 이미지가 범람할수록 실재는 멀어진다. 그렇다면 허위와 위선으로 엉킨 이미지 현실을 사진은 어떻게 반영할 수 있을까? 안이하고 피상적인 시각을 벗어던진 '거리 사진가들'(혹은 아스팔트 사진가들)의 등장은 필연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기륭, 쌍용, 대추리, 용산, 4대강, 천안함, 강정… 또 그 사이사이에 헤아릴 수 없이 많았던 사건과 세월호 현장에 어김없이 출몰했다. 사진가들은 연대했고, 은폐되고 모조된 현실을 총체적 시각으로 접근해 실체를 끝까지 드러내려 했다. 전시와 출판은 물론, 지난 8월11일에는 세월호를 기록한 사진가들의 '4시간16분 동안의 도보 행진 전시'가 만들어졌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치고 이 많은 사건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벼랑 끝까지 와버린, 회복 불가능해 보일 지경의 아비규환의 현실은 루이스 하인의 말처럼 현실의 언어로는 감당하기 힘들어 보인다. '실재에 대한 열정'(passion du r´eel, 알랭 바디우의 용어)을 움켜쥔 거리 사진가들의 놀라운 행보가 (사진 인구가 1천만 명에 이르는 시대에) 귀하고 소중한 이유다.

드디어 시작되는 애도의 시간

지금 여기에서 사진을 '본다는 것'의 경험은, 어쩌면 그동안 잊고 있던 꼽추 난쟁이(발터 베냐민)의 소리에 주목하고,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던 과거의 요청에 응답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역사의 현행화' '과거의 현재화'를 보는 일이 바로 이러한 사진 보기의 경험이 아닐는지. 망각의 바다에 침몰했던 과거를 적극적으로 생각하다보면 현재와 과거라는 두 시간의 이분법이 해소되면서 새로운 기억 방식이 열릴 것이다. '지금·현재'의 시간이야말로 침몰했던 소망을 들어주기 위해 있는 시간이고, 공동체로부터 추방될 수밖에 없었던 자들을 향한 애도가 드디어 시작되는 시간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진가는 '시대의 어둠에 시선을 고정할 수 있다는 것뿐 아니라 이 어둠 속에서 우리를 향하지만 우리에게서 무한히 멀어지는 빛을 지각할 수'(조르조 아감벤) 있는 동시대인일 수밖에 없다. 너무도 빈번히 일어나는 예외 상황이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말 못하는 상황을 보여주고 불가능한 가능성을 말하는 사진들 뒤에 거리의 다큐멘터리 사진가들이 있다.

최연하 전시기획자·사진비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