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1. 20:27ㆍ시사
▲ 영국 인명사전에서 분류한 세계 독재자 73명 [출처] [핏발울 배너 출처]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체제는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 독재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다양한 문화까지 부정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농부가 뿌린만큼, 일한만큼 수확하는 것이 당연하듯,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의 수직적 사회이동이 보장되어있어야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여러 정치적 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가 실험적이라 할 만큼 존재했습니다. 이 많은 여러 분야의 제도 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체질에 어울리지 않는 체제나 제도는 자연스럽게 기피대상이 되며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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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1-27
- 7135
출생 - 사망 1870. 4. 22. ~ 1924. 1. 21. 출생지 신빌리스크(현재 울리야노프스크) 직업 러시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지도자 분야 마르크스주의 국적 러시아 관련인물 마르크스, 엥겔스 경력사항 페테르부르크의 마르크스주의자 그룹을 '노동자 계급 해방투쟁 동맹' 으로 통일 후 체포되어 시베리아로 유형됨(1895~) 1900년 국외로 망명 후 마르크스주의 신문 「이스카라」 발행 볼셰비키 당 건설(1903~) 제1차 러시아 혁명 주도(1905~) 2월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 주도(1917~) 10월 사회주의 혁명 성공(1917~) 마르크스, 엥겔스의 후계자, 러시아 및 국제노동운동의 지도자, 러시아 공산당 및 소비에트 연방국가의 창설자. 신빌리스크(현재 울리야노프스크)의 학교 교사의 가정에서 4월22일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치고 카쟌 대학 법과에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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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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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1979. 군인·정치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제5·6·7·8·9대 대통령. 개설 본관은 고령(高靈). 호는 중수(中樹). 경상북도 구미 출생. 빈농인 아버지 박성빈(朴成彬)과 어머니 백남의(白南義) 사이에서 5남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생애 및 활동사항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 문경소학교에서 3년간 교직생활을 한 다음, 1940년 만주의 신경군관학교(新京軍官學校) 제2기생으로 입학, 군문에 들어갔다. 이 군관학교를 최우등생으로 수료한 뒤 일본육군사관학교로 전학, 1944년 졸업과 함께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관동군(關東軍)에 배치되었다. 광복 때까지 만주와 화북지방에서 일본군 장교로 전쟁에 가담했다가, 1946년 귀국하여 육군사관학교에 들어가 제2기로 졸업하고 육군대위로 임관되었다. 6·25전쟁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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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3-26
- 2808
김정일(金正日)은 1942년 2월 16일, 항일유격대 지도자 김일성과 항일유격대원이던 김정숙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김일성은 1912년 4월 15일 평안남도 고평면 남리(현재의 만경대)에서 3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지주 집안의 묘기지였다고 전한다. 할아버지 김형직은 평양의 유명한 미션스쿨인 숭실중학을 졸업한 뒤에 기독교 계통인 명신학교의 교사생활을 한 바 있다. 할머니 강반석 역시 독실한 기독교 집안 출신이었다고 전한다. 김정일의 어머니 김정숙은 1919년 함경북도 회령생으로 1935년 9월 항일유격대에 가입하여 1936년 이후 김일성이 지휘하는 항일연군 제1로군 6사에서 공작대원과 작식대원으로 활동했다. 그녀가 김일성을 처음 만난 것은 1935년 3월경이었으나 결혼은 김일성의 항일유격대가 일제의 대토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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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3-13
- 1821
모하마드 레자 샤 팔라비(페르시아어: محمدرضا شاه پهلوی Moḥammad Rezā Shāh Pahlavī, 1919년 10월 16일 - 1980년 7월 27일)는 팔라비 왕조의 제2대 샤(황제)이자 이란의 마지막 군주이다. 초기 생애와 즉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레자 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25년 재상이던 아버지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카자르 왕조를 타도하고 샤의 자리에 오르자 황태자가 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 대전 중 독일에 협력하는 정책을 펴다 영국과 소련 등 연합국의 압력으로 부황(父皇)이 퇴위하자 그의 뒤를 이어 즉위하였다. 친미 노선 1953년 석유 국유화(國有化)를 추진한 모하마드 모사데그 총리가 샤의 권력을 위협하게 되자 미국 CIA의 도움을 받아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모사데그를 실각시켰다. 친위쿠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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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2-20
- 2097
갈리시아 엘페롤 출생. 알카사르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1909년부터 에스파냐령 모로코의 리프족(族)의 민족운동을 진압하기 위하여 활약하였고 1921년 장군이 되었다. 1928년 사라고사에 신설된 사관학교 교장이 되었으나 1931년 공화제가 수립되자 공화정부에 반대한 이유로 1933년 사관학교는 폐쇄되고 발레아레스섬으로 좌천되었다. 1935년 10월 무어인 부대와 외인부대를 이끌고 아스투리아스의 노동자봉기를 진압, 참모총장이 되었다. 1936년 2월 ‘인민전선정부’가 수립되자 즉각 반(反)정부 쿠데타 준비에 착수하였으나, 정부에 의해서 카나리아제도(諸島)의 수비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 그해 7월 모로코로 가서 반정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얼마 후 반란군측의 주요인물이 사망 혹은 체포되었기 때문에 프랑코의 세력이 커져 10월 국민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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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2-10
- 2364
본명은 응웬 닷 탕(Nguyen Tat Thanh)이지만 어릴적 이름은 응웬 싱 콘이라고 불렀다. 호치민은 가명과 필명이 160여개가 되었다. 그가 태어난 곳은 베트남의 중부지방이며 행정구역은 응헤안주에 있는 호앙쭈(Hoang Tru)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은 훼이서 북쪽으로 360km떨어진 오지였으며 주변환경은 혹독했다. 그의 아버지는 농민출신으로 평범한 지식인이였다. 그의 아버지가 훼에서 관직에 올랐지만 그해 어머니가 사망하였고 그의 아버지도 관직에서 오래가지 못해 면직되었다(1929년 사망).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응웬 닷 탕의 생활은 더욱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다. 1911년 발전된 서구의 신학문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의 6000톤급 증기선(船) 아미랄 라투슈 트레빌호의 견습 요리사로 프랑스에 건너갔다. 1914~1919년까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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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2-07
- 2599
1967.1.8 반마오파가 제거되면서 중국의 문화혁명은 폭력혁명의 길로 달려갔다 시작과 끝이 명확하지 않은 전대미문의 문화대혁명.문화혁명의 정치적 열광이 정점에 이른 시기를 1967년 1월 8일 반마오파를 제거한 시점부터라고 보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없다. 이른바 마오의 후반기 권력 독점이 시작되고 폭력적인 운동으로 전개되기 시작된 것이덩과 류가 제거된 시점부터라고 보는 것이다. 전대미문의 혁명, 엇갈리는 평가 문화혁명이 언제 시작돼서 언제 끝났는지 정확하게 판정할 수 있는 논리적인 방법은 없다. 단지 베이징(北京)대학교 학생들이 학교 당국에 대대적인 도전을 시작한 1966년부터 마오의 추종자인 4인방 세력이 축출되고 마오가 사망한 1976년까지를 문화혁명 기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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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2-05
- 1906
무솔리니를 거론하는 사람들이 일관성 있게 이야기하는 점은, 그에게는 도무지 일관성이라는 게 없었다는 점이다. 가령 움베르토 에코는 “무솔리니에게 철학 따위는 없었다. 단지 그럴듯한 말뿐”이라고 말했다. 무솔리니는 극좌에서 극우로 변신했고, 코스모폴리탄이었다가 국가주의자가 되었으며, 왕년의 무신론자로서 집권 중에는 자신을 “신이 이탈리아에 내리신 선물”이라 말했고, 왕정을 기필코 타도해야 한다고 했다가, 국왕의 보호자를 자처했다가, 다시 왕정반대론자로 돌아섰다. 그 자신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파시즘은 어떤 고정된 신념체계가 아니다.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불안 1870년, 중세 이래 천 년이 넘도록 여러 나라로 갈라져 있었던 이탈리아는 마침내 통일되었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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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2-01
- 1765
1907년 12월 5일, 지금은 독립 아제르바이잔의 수도이지만 당시는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었던 바쿠에서 한 여인이 티푸스로 죽었다. 예카테리나 스바드니제. 그녀는 약 2년 동안의 결혼생활 동안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린 끝에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그곳에서 숨을 거둔 것이다. 하지만 그 남편은 그녀를 절절히 사랑하기도 했었다. 아내를 묻는 자리에서, 좀처럼 볼 수 없던 긴 통곡 끝에, 그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게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인간적인 감정도 죽고 말았네.” 그랬다. 이오시프 주가시빌리, 이제는 2년 전 레닌이 붙여 준 스탈린(강철의 인간)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던 그 남자는 끝이 없는 비인간성으로 이후 46년의 세월을 살게 된다. 그리고 수없이 많은 인민의 피 위에, 강철의 제국을 건설한다. 러시아 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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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1-28
- 2062
1933.1.30 나치당 당수로서 독일 총리에 임명되다 1932년 히틀러는 대통령 결선 투표에서 36.8%의 득표율로 낙선했다. 아쉬운 패배였지만, 이듬해인 1933년 1월 30일 제 1당인 나치당의 당수로서 총리에 임명됐다. 이날을 가리켜 비극의 탄생이라고 해도 될까? 히틀러의 나치 독일 시대가 비로소 도래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에서 히틀러를 누른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이미 86세의 고령이었다. 그는 젊고 강력한 독일의 지도자에게 총리라는 실질적인 권력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히틀러는 1923년 뮌헨에서 권력 쟁취를 위해 쿠데타를 획책하다가 투옥된 적이 있는데, 10년 만에 다른 방식으로 권력을 얻은 것이다.총리가 된지 수년 만에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열광하게 되었다. 히틀러는 분명한 목표를 정해두고 총리가 되었는데, 무너진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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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1-27
- 1477
▲ 영국 인명사전에서 분류한 세계 독재자 73명 [출처] [핏발울 배너 출처] 자유민주주의, 자유경제체제는 인간의 본성과 맞는 것 독재는 이 모든 것을 부정하고 다양한 문화까지 부정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자유롭고, 평화로우며 안전한 곳에서 살기를 원합니다. 더불어, 농부가 뿌린만큼, 일한만큼 수확하는 것이 당연하듯, 그 누구라도 자신이 일한 만큼의 댓가가 주어지고, 노력한 만큼의 수직적 사회이동이 보장되어있어야 꿈을 키울 수 있습니다. 인간이 생겨난 이래로 여러 정치적 체제, 경제체제, 사회체제가 실험적이라 할 만큼 존재했습니다. 이 많은 여러 분야의 제도 중에서 인간의 본성과 체질에 어울리지 않는 체제나 제도는 자연스럽게 기피대상이 되며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민주주의'라는 말은 법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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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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