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름휴가

2015. 9. 2. 23:58내야기

♡ 꾀복쟁이 친구들! ♡

 

꾀복쟁이들과 마을회관에서 말복 삼계탕으로 저녘식사 하면서 곁들이는 반주로 우리의 만남을 끝내는 것은 너무나 아쉬움이 남는다.

동네 호프집으로 자리를 옮겨 밤이 깊어 가는 줄 모르고 추억담은 술잔을 주고 받는데. 평소 못하던 술이 오늘은 왜 이리 취하지도

않고 술 술 잘도 넘어 가는가. 고향 꾀복쟁이 친구들과의 만남은 엔돌핀이 솟아 오르는 옹달샘이 되어 언제나 즐겁기만 하다.

 

떠올리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가 머금고

마주앉아 보기만 해도 즐거운 친구들아!

천륜(부모)이 맺어준 우리의 소중한 인연

그 인연 다 할때까지 자주자주 보자꾸나.

 

 

어머니와 하룻밤을 자고. 올해초 귀촌한 막내동생과 지난해 동생네 오미자 밭 윗쪽에 모신

조상님들께 인사하러 가는 길에 어제밤 술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전주의 꾀복쟁이를 만나

커피한잔을 마시고 고향으로 길을 나서는데 벌써 열시반이다. 고향에 가면 꼭 들리는 곳 

인삼조합 수삼쎈터에서 장사하는 친구에게 들러 식구들 보신용 인삼을 사는 일이다. 왠 일

인지 오늘은 가게문이 닫혀있어 친구에게 전화 하였더니 인삼밭에 있단다. 미안해 하는 친

구와 전화를 끓고 가는데 얼굴이 아른 거린다. 수몰되어 이사들 간뒤로 고향에 오면 유일하

게 반겨주는 하나밖에 안남은 꾀복쟁이 인데......  

 

타향살이에 세월이 흘러 이제는 나그네가 되어 찾아가는 고향.  짬짬이 가던 길을 멈추고 왠지 낯 설어진 고향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본다.

 

 

 

                                                                                        -계곡의 끝이 안보이는 수리밭골-

이곳은 험하고 멀어서 어렸을 때는 올 수 없는 미지의 골짜기였다. 막내동생 말에 의하면 저산 꼭대기에 3.000여평 정도 되는 땅에 농사를 지었던 흔적이 있는데. 정여장군과 군사들이 지었던 농토였었던 것 같다고 한다. 어렸을 때 부터 내옆에 딱 붙어 살고있는 셋째가 이말을 듣더니 퇴직하면 그곳에 들어가 자연인이 되면 좋겠다고...ㅎㅎ~야~가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고 똥X녕에 허뚝개비 바람이 들어갔나.^^ 어렸을때 농사일 한번 제대로 안해본 거시 겁도업시...집도 절도 길도 없는 산속에서 쩐다고... ㅎ~ 서랍속에 숨겨놓은 아버지 럭키치약 훔쳐 짜먹고. 할머니가 아들주려고 벽장속에 숨겨놓은 꿀단지냄새 맞고 올라가 칠흙같은 어둠에 무섭다며 내옆에 딱붙어서 손가락으로 꿀 퍼먹을 때 처럼. 천상 너는 내옆에 딱붙어 살다가 죽을 팔자여 이누마 ^^

 

 굽이굽이 가다보면 별장마을 고개넘어 장전마을 길과 마주하는 길 아래 강변에는 동화책에나 나올법한 그림같은 풍경속의 집이 시선을 사로잡아 발길을 멈추게 한.

   

정여립장군이 역적누명을 쓰고 피신하여 살다가 최후를 맏이 했다는 천반산. 정여립장군과 군사들이 쓰던 밥솥 크기가 무려 2~300명의 밥을 번에 지을 수 있는 어마 어마한 큰 솥이 있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이지역 사람들은 지금도 밥솥을 발굴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다고 하네요^^ 

 

골짜기에 들어서서 풍경을 감상하며 가다보면 앞과 뒤가 막혀버린 곳에 도달하게 되는데. 이곳이 천반산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이며 냇갈건너 천반산장 옆길로 통한다. 이 골짜기에 들어와 하늘을 보려면 25~30도 각도로 고개를 들어야 하늘을 볼수가 있으며 산수가 잘 어우러져 때묻지 않은 청정지역임을 실감하게 되는 좋은 곳이다.

 

-막내동생네 집앞 냇갈(찰칵-14년4월19일)- 

지난 어느 해 눈오고 추웠던 겨울. 봉동 이주단지로 이사한 친구에게 갔을 때 철렵국 먹고 싶어 하는 나를 데리고 족대들고 고기 잡으러 왔던 곳이다. 이 여울은 족대로 잡을 수 있는 고기와 다슬기가 많은 곳이며 물 흐름이 느린 쏘 보다. 물살이 완만한 여울에서 자란 다슬기가 크고 맛이 있다. 우측의 깊은 쏘는 루어낚시로 쏘가리와 꺽지를 잡을 수 있고. 밤에는 지렁이를 미끼로 빠가사리와 메기 낚시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상류인 고향 냇갈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 하자면. 강원도 동강에 있는 모든 것이 있는 곳이다. 수달.자라.가물치.잉어.붕어.버들붕어(치).뱀장어.칠성장어.메기.동자개.빠가사리.짜개사리(퉁가리).어름치.칠이.불무테기.멍충이.딸치(쉬리).피리(피라미 암컷).갈아지(수컷).왕산이(눈치?).마자(모래무지 암컷).추사(수컷).똘중어(돌고기).미꾸라지.기름쟁이(종자개).송사리.똥뿌락지.하늘고기.계곡에사는 중태기 등등...

 

- 막내동생 보금자리-

들러들러 오다보니 늦을 것 같아서 동생에게 점심을 먼저 먹으라 했는데. 오후 2시가 넘어 도착하고 보니 형님.형수와 함께 식사 한다고 동생내외가 기다리고 있었다. 집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깐깐한 성깔머리 답게 짜임새 있고 예쁘게 잘 지었다. 본채는 단열재를 넉넉히 넣어 지었기에 복더위에 에어컨(없음) 없이도 시원한 것이 기가 허실한 유전적 체질에 맞추어 잘 지었고. 실내장식은 건설회사 간부로 있었으니 흠잡을데 없이 조화롭고 편안하게 잘 꾸려 놓았다. 우측의 자그마한 집은 민박용 펜션인데 고향 선후배들과 서울의 지인들이 자주 찾아오는 모양이다. 그나저나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살아온 막내 제수씨. 정막함에 숨막히는 이 두메산골 까지 따라와 뜨거운 햇볕에 곱디고운 모습 태워가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일하는 것이 기특하기에 앞서 애처로운 생각이 먼저 든다...나혼자 생각이지만... 아뭏튼 이제 안주할 보금자리 마련했으니 너희 내외 해로할 때까지 오손 도손 행복하게 살기를 기원한다.

 

점심식사 후 동생과 담소를 나누고 귀촌하여 첫 수확한 건 고추 30근을 마수하여 차에 실고. 조상 산소에 가기 위해 다시 길을 나선다. 마음 같아서는 동생 오미자 밭 풀베기라도 도와주며 고기도 잡고 철렵도 하면서 며칠 묵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나이들어 생각만 있을 뿐. 후유증 없는 내일을 위해 가야 한다는 생각에 갈길이 바빠진다.

 

동생과 작별하고 하늘 덮은 가로수 터널길을 지나 강쪽을 바라다보니 신선들도 솥단지 걸고 철렵을 아니할 수 없는 풍경이 이어진다.

    

바위 오묵한 곳에 쌓인 퇴적물에 뿌리를 내리고 싱그러움을 폼내는 이늠들이 신기하다 못해 살아가는 삶이 경이롭까지 한 느낌이다. 

 

 수려한 골자기 끄트머리 마을 어귀에 둥지를 틀고 있는 백로들.                                둥지로 돌아오는 짝을 반갑게 맏이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드디어 나를 낳아 주시고 키워주신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이 계신 곳에 도착하여 어렸을때 기억을 회상해 본다 . 할아버지께서 활동하신 이야기는 내가 태어나기전에 돌아 가셨기에 할머니 어머니 동네 어른들에게 들었고 . 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1학년 2학기 때 하교 했던 어느 날 오후 친형제 처럼 지내시던 당숙께서 뛰어들어 오시더니 축쳐진 아버지를 울면서 등에 업고 신작로에 대기하고 있던 반 트럭에 실고 진안 병원으로 가셨다. 병세가 위중하여 진안읍내 병원에서 치료할 수 없어서 전주 도립병원으로 옮겨 입원 하셨는데. 추석 7일 전 도경 트럭화물칸의 관속에 누워서 죽음으로 돌아오셨다. 5형제 중 유독 나를 귀여워해 주시며 일찍 퇴근하거나 휴일이면 자주 나를 데리고 다니셨기에 아버지와 함께한  짧은 세월 이지만 아버지와의 어렸을 때 추억이 꽤 많이 있다.

 

입가에 미소가 저절로 머금는 추억 : 도.군 청 사람들이 동네 앞 냇가에 색시들과 철렵하러 올때도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몇번 가셨던 일이 있었다. 손님들이 맛있능거 주고 눙깔사탕 사먹으라고 용돈을 준게로 안갈 수가 없는 자리다. 기분좋아 천방지축 뛰어 놀다가 눙깔사탕 오믈거리며 집에 들어간 나에게 어머니가 아버지 철렵하는데 갖다 드리라고 무엇인가를 싸주며 심부름을 시킨일이 있었는데. 내가 어른이 되어 그때의 추억을 떠올리며 생각해 보니. 요즘 같으면 어림반푼어치도 없는....ㅎㅎ.하여튼 이시대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모님들의 고단수(?) 부부금슬이 떠오를 때는 머릿속 뇌파가 뒤엉켜 버리는데. 그럴때는「내 여인도 샥시하고 놀고있는 나에게 그렇게 할 수가 있스까?」 이런 생각을 해보며 그냥 마누얼굴 보면서 빙그래 우서 버리고 만다^^  

할아버지. 할머니 합장해 드리고. 아버님은 어머님께서 우리와 오래오래 살다 오기를 바라실 것이다. 

- 청백리에 능력자 이셨던 남편을 서른두살에 잃고 수절하며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잊혀지지 않는 넑두리가 있다-

- 너아버지 저세상에서 결혼 안하고 이엄마 기다리고 있을까 모르것다.

- 너아버지 저 세상에서 높은자리에 올라가서 아마 장가 갔을거여.

- 늙어 죽어서 찾아가면 나를 알아 볼랑가 모르것네.


말없고 무뚝뚝한 큰 아들보다 말 잘하고 잘듣던 어린 내앞에서 가끔 하시던  넑두리가

아버지를 그리워 하시는 어머니의 애절한 思夫曲 이었다는 것을 스므살이 넘어서 이해하게 되었다.

 

-산소와 막내네 오미자 밭-  

어렸을 때는 산소간 거리가 멀어 낫 두개와 숫돌을 가지고 날을 세워가며 이틀동안 벌초를 했는데. 지금은 막내 동생덕에 예초기로 한시간도 안걸릴 것 같아 수월하게 생겼다.

 

오미자 지주대 세우기와 심기를 남의손 안빌리고 제수씨와 둘이서 한 것을 보면 제대로 적응해 살겠다는 생각이 든다.

 

산소와 오미자 밭을 둘러보고 친구들과 고기잡고. 산열매 따먹으러 다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을 감상하며 내려와서 길을 되돌아 고향 월포를 향해 발길을 재촉하는데 해가 산머리에 걸쳐있어 마음이 바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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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월포 가는 길에서 바라본 상전 면소재지 주평리(우)와 소리실 골짝. 좌측 멀리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해발875m의 깃대봉이다. 60년대 저곳에 헬기장을 만들었는데. 주변동네 어른들이 돌아가며 부역으로 만들었다. 그때 친구 아버지 말에 의하면 밤이면 개오지(표범이나호랑이)소리에 밖에 오줌을 싸러 나오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 밖에 나와보면 눈밭에 개오지가 숙소 주변을 맴돌다 간 발자국이 2m 정도로 띠엄 띠엄 있었는데. 발자국 거리가 그정도 되는 것은 개오지 밖에 없다고 하셨다^^     

 드디어 고향마을 뒷산 꼭지바우에 도착하여 마을이 있던 곳을 바라다보니. 담수가 줄어 모든 이들의 추억을 담고 있는 월포 다리가 모습이라도 보고 가라는 듯 물위로 몸체 일부를 삐쭉 내밀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우두커니 서서 응시하며 추억속의 풍경과 면면들의 모습들을 떠올려 보는데. 먹먹한 그리움이 울컥 밀려들어 눈시울이 촉촉해진다. 옆에서 함께 서 있던 마누가 말없는 나를 쳐다보며 손을 꼭 잡고 해 저물기 전에 빨리 가자며 잡아 댕긴다.

 

여기서 황골산 짝박골 능선에 있는 빠치산 묘지에 대한 이야기를 보고 들은 대로 기록해 본다. 황골산 지게대학에 입학한지 몇 년 안되어 이골짝 저골짝을 섭렵하면서 언젠가 저 감투봉 까지 가봐야 할텐데 마음먹고 있던 중. 어느해 가을 군에서 제대한지 얼마 안되는 한철 형님이 삭되기(마른나무가지)를 하러 가자며 나를 데리고 명지목골과 짝박골 사이의 능선으로 해서 물탕골 능선까지 데리고 가는데. 능선 길 중간 중간에 볼록볼록 올라온 아기무덤이 보였다. 한철이 형님에게 “저기 아장사리(아기무덤)는 왜 여기까지 와서 무덧데요”하고 물었더니 “응 저것은 아장사리가 아니고 빠치산 무덤여” 하였다. 70년대 초 몸이 아파 고향에 내려와 심신을 다스리기 위해 등산할 때만 해도 무덤흔적이 있었는데. 80년대 초 늦가을 동생과 함께 등산할 때는 무덤의 흔적이 보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위치조차 알수가 없었다. 어렸을때 동네 약방을 하시는 친구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신작로 평상에 앉아 달밤에 빠치산을 토벌하던 무용담을 하셨는데. 그때 들은 상황을 상상하면 지금도 끔찍하고 불쌍한 생각이 든다. 아뭏든 옛날에 고향 대덕산에는 호랑이.늑대.여우. 멍석만한 독사 등 산짐승에 대한 전설도 많고. 6.25 직후에는 빠치산이 우글거려 밤이되면 동네로 내려와 총부리 들이대고 약탈을 일삼으며 사람들을 괴롭힌 일화와 그당시 동네 장년들이 대원에 지원하여 토벌했던 일화가 많은 곳이다. 서울 불광동에 살때 집주인이 군에 있을 때 고향 마을에서 약 15리 정도 떨어져 있는 가막재(주평)에 빠치산 토벌하러 갔던 일화를 들었을 정도이다.        

 

 물건너 큰봉우리 사이의 골자기가 고산골 들어가는 입구인데. 들어가는 입구는 하나지만 안으로 들어가면서 여러개의 골자기가 있 산이다. 어른들 말로는 빠치산이 우글거리던 곳이다. 물 아래 고개넘어에 안씨들이 모여사는 새부리 라는 마을에 선배네 큰집이 있는데. 어느 빠치산들이 몰려와 기르던 소를 식량으로 빼앗아 간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를 찾겠다고 큰집에 살고 계시던 할머니가 소를 찾으러 골자기 안으로 들어가 행방불명 되었는데. 빠치산들이 물러간 후 동네사람들이 유골이라도 찾으러 갔었다는데 찾지를 못하였다고 들었다. 할머니 유골을 찾으러 골자기에 들어갖다 온 사람들 말에 의하면 풀송골 중간에 하얀 것이 보여서 가 보았더니 빠치산들이 소를 세워 놓은채 고기를 발라먹은 소뼈였더라고 한다. 그후 우리동네에 살고있는 작은집 둘째 아들이 정신 이상자가 되어 아주까리 대를 이용해서 따발총 모형을 기가막히게 만들어 들고 다니며 아무에게나  총구를 들이대고 입으로 따따따 하는 것을 여러차례 목격한 기억이 있다. 그선배가 나중에 군입대를 했는데 군에서 죽었다고 했다. 후담 : 그 선배에게 억울하게 죽은 할머니 귀신이 씌워서 미친 것이다.  빠치산은 소를 세워놓고 잡아먹는 기술이 있단다. 이런말이 한참동안 떠돌았었던 기억이 있다.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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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명산순례]<20>대덕산(大德山) 고산봉(鼓山峰)
  - 금강의 상류와 용담호 굽어보는 크고 덕스러운 산 -

 

2011년 12월 15일 (목) 김정길 전북산악연맹 상임부회장 .

 

   
  ▲ 나무사다리를 내려서면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자아내는 병풍바위를 만난다.  
 

 

 

 

 

 

 

 

 

 

 

 

 

 

 

 

 

 

 

 

 

 

 

예부터 우리민족이 크고 덕스러움의 상징으로 여겼던 대덕산은 우리나라 곳곳에 많이 있다. 그 중에서 강원도 태백의 대덕산(1307m)이 가장 높고, 경기도 이천의 대덕산(309m)이 가장 낮다. 전북지역에는 덕유산 옆 백두대간의 무주 대덕산(1290m)을 비롯해 진안 상전에 정여립이 최후의 순간을 맞이했던 천반산과 금강의 상류가 휘돌아 가는 죽도를 가운데 두고 공교롭게도 두 개의 대덕산이 솟아 있다. 하지만 지역주민 김재환, 김재만(75세), 김수기(72세)씨, 상전면 직원 안찬호씨에 의하면, 죽도 남쪽의 지형도상에 나와 있는 대덕산(602m)은 부귀산의 한 봉우리라고 한다. 실제로 대덕산은 죽도 북쪽에 있는 산줄기 전체를 지칭하고 주봉은 고산봉(875.5m), 감투봉, 시루봉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고산봉은 예전에 이 산자락에 있었던 사찰에서 북소리를 들었다는 의미로 鼓(북고) 쓰며, 마을 주민들은 일제강점기 때 고산 정상에 깃대를 꼽고 측량을 했다는 이유로 깃대봉으로도 부르고 있다. 또한 대덕산이 큰 덕을 베풀어서 인지 모르지만 상전의 명산으로 수리밭골에서 한국전쟁 때 국군과 빨치산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어도 부상자만 있었을뿐 사망자가 한명도 없었을 정도였다고 한다.

산행 들머리인 상전면 수동리 산영치(山影峙)는 상전면 외송(기배기)에서 동향면 자산리로 넘어가는 큰 고개로 옛적에 산림이 울창하고 험해서 10여명이 함께 넘어야 도둑을 만나지 않았다고 전해온다. 지금은 용담댐 수몰로 인해 100m 위쪽으로 동향과 상전을 잇는 포장도로가 개설됐다. 수동(水東)리는 금강의 동쪽마을이란 의미고, 외송(外松)은 마을 뒤에 깃발을 꼽는 바위가 있어 ‘기배기’ 문바위로 불렸으나, 소나무 숲 골짜기 밖에 있는 마을이라는 이유로 한자로 고쳐진 이름이다. 내송(內松)은 옥녀가 거문고를 타는 명당(玉女彈琴)에서 소리가 들려 ‘소리실’로 불렸으나, 소나무 숲 골짜기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한자로 고쳐진 이름이다.

 

   
  ▲ ②대덕사 위 계곡의 폭포.  
 

 


 

 

 

 

 

 

 

 

 

 

 

 

 

 

 

 

 

 

 

 

 

 

산의 날머리인 월포리 대구평(大邱坪)마을은 풍수지리상 큰 거북이 진주 속에 묻혀있는 형국이며, 월포(月浦)는 금강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형국이 마치 달덩이 같은 섬처럼 보여서 붙여진 이름이다.

볼거리

[죽도유원지] 장수 신무산에서 발원한 금강 원류인 장수천과 덕유산네서 발원한 안성천이 휘돌아서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죽도는 마치 죽순처럼 뾰쪽하게 솟아 내륙의 섬이 됐다. 예부터 깊은 골짜기 피난의 땅의 대명사로 불려왔으며, 정여립(鄭汝立)이 조선 선조 때 역신으로 몰려 관군에게 포위되자 자결하게 된 곳이 바로 죽도 옆에 있는 천반산이다. 이때부터 전라도를 반역의 땅으로 낙인찍혀 호남의 인재들의 등용문이 막혀버린 요인이 되었다. 죽도의 수려한 자연경관은 용담댐이 들어서면서 수몰되었다.


산행안내
산영치-(1.0)병풍바위-(2.5)대덕산-(0.5)헬기장-(1.0)고산-(3.0)대덕사-(2.0)상전면 구룡리

교통안내
[드라이브]전주-30번국도-무주 안천방면(5km)-언건교차로 우회전-49번도로-동향면방향 직전(7km)-죽도유원지 뒤 산영치

 

   
  ▲ ③성산에서 고산봉과 산영치를 거쳐 진안과 전주를 오가던 고개.  
 

 

 

 

 

 

 

 

 

 

 

 

 

 

 

 

 

 

 

 

 

 

 

 


산행안내

이번산행은 상전면(면장 전형욱)에서 개설한 1코스를 전주명품산악회 이경림 등반대장과 지역주민 김재환, 김재만, 김수기씨의 안내를 받아 호남지리탐사회원들이 답사했다. 금강 상류가 비단결처럼 휘돌아가는 죽도와 폭포가 내려다보이는 49번도로 산영치(동향과 상전을 잇는 도로)에서 북쪽으로 오르면 서쪽으로 수리밭골과 김재환씨 집이 자리잡은 호암이 다가온다. 49번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동향사람들이 성산에서 고산봉과 산영치를 거쳐 진안과 전주를 오가던 고개다. 호젓한 산길을 가노라면 깃대봉(4.6km)을 알리는 팻말이 반긴다. 갈참나무숲을 오르면 예전에 7세대가 닥나무 재배와 숯을 구어 생활하던 수리밭골이 다가온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 부귀산(지형도상에 대덕산)과 죽도가 보이고, 우리가 가야 할 북쪽으로 소나무와 바위가 어우러져 멋진 풍광을 연출하는 병풍바위가 보인다. 동쪽은 금강의 상류가 휘돌아가는 섬계마을이 무척 평화롭게 느껴진다. 고스락에 올라서면 이정표가(동쪽 장전, 북쪽 고산봉 3.6km)를 알린다.

나무사다리를 내려서면 바위와 소나무가 어우러진 병풍바위를 만난다.(산영치에서 40분 거리) 병풍바위에서 안상용(재경상전면회장)씨 일행을 만났다. 맑은 날은 남쪽 죽도와 부귀산, 마이산, 동쪽 천반산, 동북쪽 덕유산이 보이는데 오늘은 황사 때문에 조망이 어렵다. 북쪽 고산봉, 서북쪽 감투봉, 서쪽 수리밭골, 동쪽 금강과 동향의 마을을 굽어보며 능선을 오르면 어느덧 삼각점(무주 24)과 이정표(외송 6.1km, 고산골 2.6km)가 있는 대덕산의 주봉인 고산봉에 닿는다. (산영치에서 2시간10분 거리) 북쪽으로 용담호와 지장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맑은 날은 계룡산, 서대산, 덕유산, 지리산, 마이산 등이 한눈에 잡히는 조망대인데 극성스런 황사가 눈앞을 가린다. 동쪽은 동향면 지사리로 가고, 감투봉은 서쪽으로 꺾인다. 5분쯤 능선을 걸으면 헬리포트가 있다.

점심을 즐기고 출발하면 북서쪽 빈질바위(전라도 방언으로 쉰질바위(50명의 키 높이)를 빈질로 잘못 표기함. 1.2km)를 거쳐 고산골로 가는 이정표(죽도 5.7km,)를 만난다. 12시55분, 또 다시 갈림길 이정표(서쪽 외송4.4km, 대구평 3.5km, 동쪽 고산봉1.7km) 서북쪽 고산골(2.3km) 방향으로 나무계단 급경사를 내려가면 너덜지대를 내려가면 동쪽은 쉰질바위(0.6km)를 거쳐 고산봉(2.6km), 서쪽 감투봉(2.4km) 갈림길을 지나서 안천면 지사리와 대덕사를 잇는 시멘트임도를 만난다.(13시45분) 폭포를 만나고 10분이면 대덕사에 닿는다. 대덕사에서 삼거리까지는 20분, 시외버스를 타는데 까지는 40분이 소요된다.

 

먹을데

 

                                                                산장 민박집 앞 냇갈

◈ 잘

 

 

 

 

 


04 고향초.w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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